나는 시카고 선물회사 시절의 절반이상을 브로커로 지냈다.
하루 평균 2백건의 주문을 받아 피트(pit)로
전달,체결확인,통보해 주는 게 통상 일과였다.
주문이 많을 땐 양손에 쌍권총,코 앞의 마이크까지 전화 세대가 동시에 불이 나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화장실도 뛰어서 다니고,점심도 데스크에 앉아 까먹었다.
그것도 입에 음식이 찼을 때 주문이
올까봐 그 큰 샌드위치를 조금씩 수십번을 손끝으로 떼어 먹곤 했다.
그런데 그 일을 처음 하면서 놀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전문가들의 시장을 읽는 눈이었다.
매일 조간에 나오는 그들의 전일 시황해설은 볼수록 완벽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어제는 시장이 그렇게 움직였던 거다.
당연한 것 아니냐.뭐 충분히 예상됐던 일 아니냐는
투의 당당한 논조에는 매번 감탄을 금할 수 가 없었다.
정말 대단하다.
나는 뭐야.고객 돈도 시원하게 못
벌어주고.뭘 물어와도 대답 한 번 변변하게 못하고.맨 날 꼭두각시처럼 주문만 넣고 앉았으니 경제학은 헛공부한 게 아닌가.
늘
부러움과 허탈감만 더할 뿐이었다.
또한 장이 왜 이러나 싶어 여기저기 헤집고 다녀도 봤지만 가도가도 보이는 건 안개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차츰 깨닫는 게 있었다.
답 보고 쓰는 시황은 아무라도 쓸 수 있다.
중요한 건 내일인데 그걸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국생활을 마치고
와서 보니 사람사는데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소위 무슨 호재가 있어 오르면 그 때문에 올랐다,만약 그래도 내리면 이미 반영된 재료라 가치가
없었다,또 주가가 내리면,유가급등 구조조정 지연이 원인이다,그런데도 오르면 저점인식 확산,단기 급락에 따른 반발매수 유입. 구구절절 옳은 말
밖에 없지만 미래를 말해보라 하면 그 누구도 자신이 없다.
조심조심 한 번 짚어 본 연말예상지수도 마치 불경죄를 벌하는 듯 훤하게
비켜가 버렸다.
부푼 가슴으로 맞았던 한 해가 짙은 한숨 속에 저물었다.
이제 또 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했던가.
이제 과거는 잊자.주식투자에 있어 가장 해로운 생각이 바로 옛날 생각,본전
생각임을 알지 않는가.
옛날 생각을 하니 지금이 싸 보이고,본전 생각이 나니 손절매를 못하고. 그렇게 뒤만 돌아보고 뛰다가 벽에
부딪혀 코피를 흘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제 미래는 미래에 맡겨 두자.한치 멀리 내다보고 한발 먼저 가려다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았는가.
많이 알고 먼저 알면 더 크게 깨진다는 역설의 진리가 이젠 피부에 와 닫지 않는가.
과거도
잊고,미래도 묻지말고,또 한 수 배워보자는 겸허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자.많이 고통받은 만큼 크게 웃을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지난해 말 어느 지방 강연 때의 일이다.
장미빛 전망만 믿고 기다리다 큰 손실을 입은 중년 부인 한 분이 강연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강연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도착한 그녀는 일찌감치 심상찮은 분위기를 예고했다.
강연에 앞서 마련된 개별
클리닉에서부터 그간 쌓인 분노를 폭발했던 것이다.
"당신 같은 전문가들 땜에 다 죽게 생겼다.
연말 주가 얼마까지
간다 어쩐다 그렇게 큰소리 뻥뻥 치더니 이게 뭐냐"며 포문을 열자 평온하던 상담실이 갑자기 싸늘하게 얼어 붙었다.
그릇된 투자습관
운운하며 소위 투자클리닉을 시도하던 우리 직원도 속수무책이었다.
입을 열기가 무섭게 그분의 속사포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감정이 격앙된 그녀는 마침내 "잡아 가두니 죽이니 살리니" 하는 험한 말까지 마구 쏟아 냈다.
그러기를 한 시간.
가만있지 않겠다는 경고와 함께 1차전이 끝났다.
잠시 후 강연장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여전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별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염려 속에 강의가 시작됐다.
주가가 오르고 내릴 확률은 결국
반반이다,예측을 액면 그대로 믿는 건 곤란하다,주식은 위험관리를 하면서 장이 올 때까지 살아 남는 생존 게임이다.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말했다.
"이제 기분 좀 풀고
고개를 드십시오.얼마까지 간다,저평가됐다 어떻다 해서 폐를 끼친 점,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정중하게 사과 드립니다.
하지만 주가는
전문가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3백만 투자자가 결정하는 겁니다.
따라서 전문가의 예측보다 시장의 가격을 더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곤 예(例)의 고스톱 비유를 댔다.
청단 석 장을 "쥔" 패가 최악의 패다.
그걸 쥐었다는 것때문에 망한다.
청단에 대한 미련으로 쌍피 내주고 뭐 내주고 하다가 쓰리고에 피박을 쓴다는 말이다.
청단이 있어도 쌍피를 먼저 쳐서 일단 피박부터 면해야 한다.
말(末)에 질 수도 있고 설사를 할 수도 있으니 청단이
나고 말고는 뒷손이 말해 주는 것이다.
주가도 시장이 말해 준다.
그러니 아무리 좋다는 주식도 사는 순간 손절매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추천주니 연말 주가니 하는 것만 믿고 대책 없이 기다려선 안 된다.
믿는 구석이 있을수록
더욱 손절매를 못하고,그러다가 대부분 크게 잃는다.
그렇게들 왕창 깨질 바에야 차라리 신문도 만화만 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생명도 한 번 가면 못 돌아오듯 계좌도 딱 한 번 깡통으로 끝이다.
수익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이렇게
갖은 비유와 역설로 달랜 보람도 없이 결국 그 사모님은 한바탕 2차전을 치르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3차전이 또 남아 있을 줄이야.이튿날 그녀의 악의적이고 과장된 제보(?)를 받은 어느 기자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 줄 아느냐.신문은 꼭 만화만 봐라 했다는데 진짜냐.신문은 다 거짓말이라 했다는데 정말이냐
하면서 호되게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참 억울한 노릇이었지만 그걸로 그녀의 분이 풀린다면 그냥 감내하리라 하며 참고 말았다.
전문가들이 뿌린 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후야 어찌 됐든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장미빛 전망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희망은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것이다.
불행은 도둑처럼 다가온다.
항상 대비하며 살자.
"맞은 놈이 발 뻗고 잔다"는 말이 있다.
잘못을 해서 맞았으면 몸은 뻐근해도 맞을 걸 맞았으니 잠은 잘 온다.
억울하게 맞은 경우도 속은 상하지만 궁극적으로 내 잘못이 아니니 곧 잊어 버린다.
그렇지만 반대로 때린 놈은
두고두고 잠자리가 불편하다.
때릴 만했어도 일단 폭력을 썼으니 잘잘못을 떠나 내내 마음이 쓰인다.
또 부당하게
때렸다면 더더구나 잠을 못 잔다.
가만히 보면 우리 투자자들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고 산다.
흠씬 얻어맞고는 금방
잘 자는데 냅다 때리고 나서는 몇 달 밤잠을 설친다.
주식 사서 깨질 때보다 팔고 나서 오를 때가 몇 배 더 뼈에 사무친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 보자.
주식에서 다른 건 몰라도 손절매 하나만 잘 하면 최소한 큰
손해는 안 본다.
하지만 바로 그 "손절매"가 사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머리는 시키는데 손이 말을 안 듣기
때문이다.
손해보고 판다 생각하면 전신 마비가 오니 천하장사라도 결국 못 때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락장에 걸리면
대부분 주먹 한 번 제대로 못 내밀고 늘씬하게 터진다.
이 경우 당장은 퉁퉁 부어 잠을 못 자지만 차차 진정하고 적응을 한다.
제 때 안 팔았으니 모든 게 내 탓이려니 체념을 한다.
또 견해가 확고한 사람은 내가 맞고 시장이 틀렸다는 자존심
하나로 견딘다.
게다가 나만 터진 게 아니라 다같이 터졌다는 동병상련지정 또한 일조를 한다.
어쨌든 아무 액션 없이
가만히 앉아서 당했으니 선량한 피해자라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고통이 덜하다.
그런데 상승장에 내다 파는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인간 본성이 공짜를 좋아해서 좀 오른다 싶으면 이게 웬 경사냐 하고 그냥 때려 버린다.
그런데 주가라는 게 일단
추세를 타면 정신을 못 차리는 법,사람 약 오르기 좋을 만큼 치솟는다.
그러면 이 때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팔아서 챙긴 돈보다 도망 나와 놓친 돈이 더 커 보여 속이 쓰리다.
괜시리 호들갑을 떨어 작품을 망쳤다는 자책감에
돈을 따고도 불행하다.
가만 있다가 당한 게 아니라 손을 놀려 화를 자초했으니 그 쓰라림이 열 배는 더하다.
이를테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심리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남은 다 부자 됐는데 나만 바보짓 했다는 후회감은
길게는 평생도 간다.
그래서 주식 시장에서도 때린 사람이 발 뻗고 못 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이후의 스토리다.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은 뒤에 내리는 결론이 주식에서 매도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내릴 땐 본전 생각에 못 팔고. 장이 빌빌거릴 땐 먹는 게 없으니 시시해서 못 던지고.그리고 오를 땐 전번처럼 때리고 나서 더
뜨는 변고(?)를 당할까 싶어 또 못 팔고.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그간 바친 수업료가 아까워 늘 발은 담그고 있고.결국은 1년 삼백육십오일 "요
놈의 주식 언제 파나"를 고민하며 사는 것이다.
참 어렵다는 그 "매도 숙제"를 아직 못 풀어서 그렇다.
최근에
다시 장이 들썩거린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또 고통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해묵은 숙제를 풀어 버리자.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바로 "지금보다 낮은 가격에 판다"고 작정하는 것이다.
그게 큰 손실을
피하고, 또한 뜻하지 않은 추세를 즐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곰곰이 잘 생각해 보자.
고점매도가 아니라 "저점매도"가
맞다.
최근 주식시장의 상승을 두고 "유동성(流動性) 장세"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풍부한 돈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장(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초부터 2조원 이상 쏟아 붇는 외국인 순매수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것인가.
투자 주체는 누군가.
만일 단기성(短期性) 헤지 펀드라면 언제쯤 도로 빠져 나갈까.
엔화 약세를 이용한 자금인가.
이 랠리(rally)가 끝난 뒤에는 또 어떻게 될까 다들 궁금해 하다 보니 자연히
왈가왈부 논의가 무성하다.
하지만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고 과도한 관심이 자칫 일을 그르칠까 염려스럽다.
그래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재미난 얘깃거리 하나를 소개한다.
오랜 타국 생활에서 돌아온 나는
여기저기 동창회에 나가는 게 큰 낙이었다.
친구들 소식도 궁금한 데다 통 소식을 못 전한 마음의 빚까지 있어 웬만하면 다 참석을
했다.
그런데 정기총회다 체육대회다 빠꼼한 날이 없으니 집에 있는 아낙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동창회 운운할
때마다 쌀독이 내려가니 여간 성화가 아니었다.
처자식은 뭐냐,그렇게 퍼 주고 얻는 게 뭐냐고 바가지였다.
시장이
벌어 줬으니 시장에 반납하는 것 아니냔 게 주로 내 변명이었다.
그렇게 티격태격 살던 중 사건이 생겼다.
우리
클리닉에 고교 동창이라고 누가 찾아온 것이었다.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해서 강의 끝나고 멋쩍은 인사만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며칠 후 식사초대를 했다.
나가서 실컷 잘 얻어먹었는데 그게 추세의 시작이었다.
계속해서 선물도
주고,좋은 일만 있으면 꼭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뒤늦게 얻은 친구지만 너무 고맙다 싶은데 아내 생각은 달랐다.
뭔가 이상하다,혹시 간첩 아니냐, "이유 없이" 너무 잘해 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뭘 해 줘도
꼭 그 저의부터 따졌다.
도저히 의심이 안 가시던지 졸업앨범까지 확인한 아내는 그래도 조심하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퍼 내기만 하던 게 역전됐으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곡절 끝에 결국 우리 부부는 그 친구랑 운동도
매일 같이 하고 생활에 큰 활력을 얻게 됐다.
졸업 후 처음 참석한다며 나와 같이 간 동창회에서 그가 내놓은 기부금 또한 큰 덕을
베풀었다.
어렵던 모교가 힘을 차렸음은 물론이고, 수천 명 동문의 사기(士氣)도 하늘로 치솟게 됐다.
따지고
의심하고 경계해서 멀리했더라면 영원히 묻혀 버렸을 소중한 기쁨들인 것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의심이 있다.
귀신같이
거꾸로만 가는 주가에 맨 날 치이고 사는 우리 투자자는 훨씬 더하다.
그래서 해를 넘겨서야 비로소 날아든 이 행복이 벌써부터
두렵다.
오늘이 끝인가 내일이 마지막인가, 자꾸 외국인 주머니에만 시선이 간다.
하지만 이젠 좀 바뀌자.
내릴 때도 그 "설마" 땜에 그 큰 불행을 겪지 않았는가.
유동성이고 무동성이고 간에 오늘 행복하면 됐다.
안달하지 말고 의심도 하지 말고 지금 이 행복을 최대한 즐기자.
작년 말 호흡기 꽂고 헉헉대던 때에 비하면 한결 숨
쉬기가 수월해졌다고 위로하며 말이다.
유동성 장세.
이유가 없는 게 아니다.
"돈"이 그 어떤 화려한
펀드멘털보다 더 무서운 이유인 것이다.
외국인이 다 사고 나면 그 땐 또 외계인이 와서 사 줄지 내일 일을 누가 알겠는가.
그냥 느긋하게 앉아서 지켜보자.
도둑처럼 다가오는 행복, 아무 의심 없이 대문을 활짝 열어 놓는 자만이 차지할
자격이 있다.
"모든 투자자가 다 김 원장 말대로 따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그 땐 또 반대로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클리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아 본 질문을 꼽으라면 단연 이 질문이다.
우리 얘길 듣고 크게 공감하시는
분들이 주로 이걸 묻는다.
"투자클리닉 말이 따지고 보면 틀리는 말이 별로 없다.
한 번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안 따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수가 동참을 할 것이고 그리 되면 효력이 점차 떨어질
것이고 궁극적으론 그 반대로 가야 먹을 게 있지 않을까".
이런 추론 끝에 나오는 질문인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담배가 나쁜 줄은 다 알지만 아무리 끊으라 해도 전부 다 끊지는 않습니다.
남도 다 끊으면
어쩌나 싶어 내가 안 끊을 이유는 없습니다.
나만 끊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스승이신 데니스(Richard
Dennis)씨는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좋은 성적을 내시는 이유가 몹시 궁금합니다.
혹시 그 비결을 공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그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 원칙을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1면에 공개한다 해도 아무도 안 믿을 겁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돈을
벌다니 믿을 수가 없어.
틀림없이 진짜 비밀은 숨겨 놓고 안 알려 주는 걸 거야 하고 말입니다"
나야 그 분에
비하면 한참 하수(下手)지만 어쨌든 그 분이나 나나 결국 얘기는 같은 얘기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뻔하게 알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분 입장은 어차피 못 쫓아 할 거 알려 줘서
무슨 득이 있겠느냐는 거고, 나는 그러니까 알려도 무방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고점매수, 저점매도, 손실은 짧게, 이익은 길게"
무슨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수식이 있어 머리가 띵한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러니 글자 그대로의 큰 그림을 그려 놓고
나름대로 세부 원칙을 세워 실천만 하면 된다.
세계 어느 나라 어떤 가격이든 의심 없이 행하면 그만이다.
가격은
심리이고, 심리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해 보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되도록 싸게
사고 싶은데 비쌀 때까지 기다렸다 그 때 사라고 하니 사람 할 짓이 아니다.
조금씩 손해 보고 팔 때 오히려 즐겁게 여기라 하니
맨 정신 가지고는 안 된다.
되도록 많이 먹고 팔고 싶은데 상당 부분 돌려 주고 나오라 하니 보통 짜증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콱 찍어 단번에 올라서고 싶은데 분산하라 하니 여간 째째한 게 아니다.
못난 사람 심리가 그 간단한 걸 못
지키게끔 날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마음 가는 대로 쉽게 쉽게 해서는 큰 성공을 못 거둔다.
심리적으로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결정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수가 소수에게 갖다
주는 게임.
쉽게 쉽게 살면서 배고파 하는 다수보다 어렵게 어렵게 살면서 배부른 소수가 되자.
시간이 지나고
굳은살이 박히면 그 어렵던 결정들이 쉽게 쉽게 내려지는 때가 반드시 온다.
모진 마음 먹고 하기 힘든 걸 해 내자
1천만원짜리 자동차 한대가 있다.
몰고 다니려고 구입한 차라면 보험을 드는 건 상식이다.
만일 보험이 없다면
엄밀히 따져 나는 차가 한 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99% 확률로 차 한 대,1% 확률로 고철 덩어리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서 찌그러져도 1천만원,멀쩡해도 1천만원.
항상 내 차의 가치를 1천만원으로 고정시켜 주는 것.
그게 바로 경제학적 의미의 보험이다.
사고가 날 확률에 따라 보험료를 내니 가입자의 기대치는 제로다.
보험회사도 여럿한테 푼돈 받아 한 번씩 목돈 내 주니 평균적으로 본전 장사다.
이렇듯 금전적으로만 따지면 보험은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하지만 경제 전체로 보면 생활안정,고용창출 등의 효과가 있으니 윈윈(win-win) 게임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출발한 것이 선물(先物)이다.
쌀 1백 가마 수확을 몇 달 앞둔 농부는 가마 당 20만원 하는
현재 가격에 불만이 없다.
추수 때도 이 가격이라면 이리저리 비용 제하고 조금 남는다.
그렇지만 그 동안에 가격이
급락하면 큰일이다.
까딱하면 1년 농사가 허사다.
그래서 현재가격 정도에 미리 쌀을 사 줄 사람을 찾아 선도(先導)
계약을 한다.
몇 달 새에 천지개벽이 돼도 곡식대금 2천만원은 챙길 수 있도록 소위 위험을 헤지(hedge)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도거래가 어떤 땐 손해가 나고 또 어떤 해에는 이득이다.
쌀을 미리 사는 양곡중개상은 그 반대
입장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둘 다 금전적 손익은 제로다.
각각 가계와 사업의 "안정운영"이라는 득만 얻는 것이다.
따라서 선도거래가 제도화된 선물거래도 보험처럼 위험회피 측면이 있어 본질적으로 윈윈 게임이다.
문제는 이렇다.
가령 위의 농부가 선물시장에 쌀 1백 가마를 가마 당 20만원에 팔았다 하자.
선물 만기일에 쌀 1백 가마를 주고
돈 2천만원 받아 오는 계약을 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만기일 즈음에 15만원으로 쌀값이 하락했다.
이 경우
20만원에 선물을 매도해 둔 건 정말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 쌀을 반드시 20만원 받고 선물시장에 팔 필요는 없다.
현물시장에다 15만원에 팔고,선물은 중도 청산해서 5만원은 현금결제를 받으면 된다.
결국 합해서 가마 당 20만원
받는 셈이니 경제적 효과는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니 참으로 매력적인 사실이 발견된다.
"이거 쌀 없이
순전히 투기적으로 했어도 5백만원을 벌 수 있었던 거 아니야.더구나 선물은 차익만 결제하니까 돈도 2천만원까지 필요 없고.증거금
10%~20%,즉 2백만~4백만원 갖다 넣고 그 큰 돈을 벌 수가 있었던 거 아니야"
투기적 거래자들(speculators)의
구미가 당기는 대목이다.
여기서 선물은 곧 "떼돈"이라는 환상이 싹튼다.
그리고 위험회피는 커녕 짜릿한 "위험추구"
수단으로 점차 본질이 왜곡된다.
갈수록 헤져(hedgers)는 수그러들고 오히려 무슨 "물고기"니 "낙지"니 수중전투만
요란해진다.
이를테면 공부하라고 사 준 컴퓨터로 공부는 조금만 하고 종일 오락을 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지난주에
코스닥50선물이 출범했다.
금융강국의 미래로 또 한 발 나아간다는 생각에 정말 가슴 뿌듯하다.
그리고 여타 시장의
성장에 비추어 볼 때 이 시장의 성장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부디 본질을 망각하지 않고 품위 있게 커 가는 시장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투자자들께 "위험관리" 네 글자를 늘 되뇌면서 매매에 임하시길 간절히 당부 드리고 싶다.
내가 공부하던 시카고에도 93년 겨울에 폭설이 자주 내렸다.
기온까지 영하 30도로 내려가 차(車) 시동을 껐다가 다시 걸면
안 켜지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살판난 건 동네 흑인들이었다.
트럭에 대형 충전기를 싣고 돌아다니는데 온 길거리에
널린 게 돈이었다.
차 한 대당 10달러 받는 충전 서비스사업이 최대 호황을 누렸다.
보통 때 같으면 당연히 공짜로
해 줄 일을 때를 잘 만나 "짭잘한" 수입을 올린 셈이다.
그런데 시카고 시(市)는 반대로 곤경에 빠졌다.
도로에
뿌릴 염화칼슘이 바닥난 것이었다.
아무리 뿌려도 눈은 또 오고 급기야 단위당 1달러 하던 염화칼슘 가격이 10달러까지 치솟았다.
봄이 오면 1달러로 다시 내릴 게 뻔한데도 당장 급하다보니 비싼 값에 인접 주(州)로부터 수입(?)까지 해야 했다.
덕분에 나도 난생 처음 왕소금이 아닌 금싸라기를 밟으며 운전을 해 보았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일은 허다하다.
앞으로 가격 하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현재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는 그런 일 말이다.
지난 달 강추위가 덮치던
날은 밤새 "따불(double)"을 불러도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산(山) 밑에선 3백원이면 충분한 커피 한잔이 산 정상에선
천원을 내고도 마신다.
주식으로 눈을 돌려보자.
코스피 선물(先物) 저평가는 96년 이후 줄기차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최근 코스닥 선물 역시 현물보다 낮게 간다.
97년 11월 외국인한도 확대 때도 현저한 선물 저평가에도
불구, 삼성전자는 꿋꿋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해석을 하자면,원금 밑질 정도로 미래는 어둡지만 주식이 좋다거나 필요해서 자꾸 사
대는 데는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경제학에선 이런 현상을 두고 "공급의 비대칭성(asymmetry in supply) "이란
표현을 쓴다.
뜻은 이렇다.
상대적 "공급과잉"은 지나친 가격하락 방지를 위해 그 공급을 유보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지금 너무 값이 나쁘면 안 팔고 후일을 도모해 남겨 둘 수 있단 말이다.
그러면 자연스런 자정(自淨)
과정 속에 현재가격과 예상 미래가격은 괴리가 없어진다.
반대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수요급증이든 절대적 물량부족
때문이든 여하튼 상대적 "공급부족"에는 대책이 없다.
앞의 논리대로 지금 가격이 워낙 좋으니 훗날 공급할 물량을 앞당겨 와야
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내년에 추수할 쌀을 오늘 미리 갖다 팔 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향후 가격은 나빠
보여도 지금 당장은 가격이 얼마든지 비등할 수 있다.
앞서 염화칼슘 예처럼 열 배 괴리가 한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이래서 부족할 때는 풍족할 때와는 가격 구조가 비대칭이라 하는 것이다.
결코 충동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게 아니고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장(場)이 많이 떴다가 출렁대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또 거품론이 나오고 있다.
거품을 아까운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설사 진짜 거품이라 쳐도 비누보다 거품이 더 큰 돈이 됨을 온갖
시장 역사가 말해 주지 않는가.
바닥론에 그만큼 다쳤으니 이제 거품론에 또 질식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주식 사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거품이란 없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다.
흰 도화지 앞에만 서면 막막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한번 이변이 있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
한참 그림을 그리는데 어깨넘어로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게
웬일인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이런 욕심이 생겼다.
"그래 내게도 숨은 재주가 있었구나.
이 참에
뭔가를 보여 드리자".
나는 하늘이 내린 그 신기(神技)를 한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 색 저 색,요 구석
저 구석 최상의 감각과 손놀림으로 작품을 완성시켰다.
잠시후 다시 와서 내 그림을 쳐다보시던 그 선생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잘 그린 그림을 왜 손을 대 망쳐 놨냐".
실망과 아쉬움,바로 그 자체였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여지껏 그때 일을 잊지못하고 있다.
주식도 하다가 보면 이런 일이 잦다.
무심코 산 주식이 뜻하지 않은 수익을
낼때,사람인 이상 욕심이 발동한다.
"운 좋았군"하고 그냥 놔두면 될 걸 이 기회에 한 번 단단히 수익을 챙겨보자고 곡예를
시작한다.
그렇지만 대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끝에 결국 발을 헛디뎌 코가 깨진다.
그 전형적인 예가 소위
"수량(數量) 불리기"다.
지금 많이 올랐을 때 일단 팔고 내려오면 다시 사자는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같은 돈으로
주수(株數)를 늘리는 것이다.
정말 근사한 생각이다.
기본적으론 주식을 보유해서 큰 대세를 취하되 그 중간에 작은
파동들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욕에 찬 발상이다.
그러나 주식에 있어 달콤해 보이는 생각은 거의가 해로운 생각.
이
기막힌 전략이 결국 패하는 건 대략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일단 고점에 판 주식을 낮은 가격에 다시 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시도해서 또 성공한다.
그야말로 신기(神技)를 발휘하는데 돈도 늘고 수량도 불고 얼마나 기분이 흐뭇한지 모른다.
이대로만 가면 이 종목 하나만으로도 한동안 짭잘할 것 같다.
다시 세번째 시도.
저가에 매수주문을
내놓고 곧 잡히기만 기다리는데 이번엔 뜻대로 잘 안된다.
오락가락하던 가격이 갑자기 확 올라가버리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부터 그림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팔았던 가격보다 더 높게 가면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못 산다.
입술을 태우며
기다리는 사람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가는 자꾸만 오른다.
그러다 잠시 가격이 주춤하는 틈을 타 참다 못해 매수에 들어간다.
세상에 뜻대로 안되는게 주식.
이 때부터 가격이 내려간다.
여전히 전체적으로 이익을 보고 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다.
방금 다시 산 가격을 생각하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기다려 볼 걸 괜한 짓을
했다는 자책감에 가슴이 쓰리다.
일이 이쯤되면 애당초 길게 보유하려던 계획은 눈 녹듯 사라지고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다.
사고 팔기를 되풀이 하다 결국은 점잖게 앉아서 벌돈을 부지런 떨다 다 까먹어 버린셈이다.
작년 말을 생각하면 요즘은
숨쉬기가 훨씬 편하다.
죽었던 목숨 다시 살려 줘서 지금은 덤으로 사는 목숨이라고 생각하면 배짱 또한 편하다.
그
편한 호흡과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지금은 좀 느긋하게 지낼 때다.
잘 될 때 지나치게 술수를 쓰면 복이 오다가도 돌아선다.
수량불리기,그 뜻은 좋으나 실패로 끝날 확률이 너무 높다.
전파를 타다 보니 뜻하지 않은 해프닝 또한 가끔 있다.
시장이 속절없이 무너져 투자자들 손실이 아주 심각했던 작년 어느
때다.
주식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불어 넣어주자는 취지의 TV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거의 반나절을 카메라 불빛 앞에서 진땀을 흘렸다.
그러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평소 꽤 친분이 두터운 분인데 그 전 날 TV를 보셨다는 것이었다.
아,그 방송이 어제 나갔구나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분 말씀이 이어졌다.
"주식은 안 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한 그 대목 때문에 아침부터 몹시 곤혹스럽다는 것이었다.
속내는 끝내 감추셨지만 분위기로 보아 위로부터 무슨 따가운 질책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투자를 장려해도 뭐할 판에
하지 마란 얘기가 버젓이 방송에 나오다니 어찌 된 일인가?
아마 이런 논의가 오갔던 게 아닌가 싶었다.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고 녹화 테이프를 구해 본즉슨 기막힌 "편집의 묘(妙)"가 범인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몸통만 불쑥 한 마디 따로 편집된 게
화근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증권사 직원의 소행이었으니 충분히 화가 날 만도 해 보였다.
거꾸로
방송의 입장에선 "경각심"이란 면에서 최대 효과를 얻고 흐뭇해 하지 않았나 싶었다.
"주식투자, 이렇게 계속하시느니 차라리 지금
그만두십시오" 나는 그래도 때때로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도저히 습관이 안 고쳐지는 분들을 위한 일종의 충격 요법 차원에서다.
그리고 왜 그만둬야 하는가를 이렇게 설명한다.
가령 네 사람이 고스톱을 친다 하자.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한 판도 안 죽고 계속 쳐야 되는 제한이 있다 하자.
물론 나머지 셋은 패가 나쁘면 돌아가며 쉴 수 있다.
이 경우 결과는 뻔하다.
절대 못 죽는 바로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다 털리고 영원히 죽는다.
따라서
이 사람은 오래 앉아 팔 아프게 두드릴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아예 안 치는 게 득인 것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반 토막 난 패를 들고 내 본전 얼마를 외치며 끝까지 버티는 사람.
끝없는 하락장에 기어코 "열고(열Go)"를
부르며 출석률 1백%를 자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답이 이미 나와 있다.
절대 안 죽으려다 제일 먼저 죽는다.
그러니 용 쓰고 돈 잃느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금리 5% 시대.
은행에 돈 갖다
맡겨도 왕복 차비 빼고 잔돈 몇 푼 남는 시대.
아무리 안 하는 게 낫다 해도 이제 주식을 안 할 수 없는 시대.
마침내 선택과목에서 필수과목으로 학제(學制) 개편이 된 것이다.
요는 성적이 좋아야 될 텐데 그간 점수를 너무 못
받아 자신이 없다.
최근 어느 환자의 고백처럼 이제는 주눅이 들어서도 더 이상 손이 안 나간다.
하지만 겁먹을 것
없다.
오히려 당당한 자신감을 가질 때다.
여태껏 치른 수많은 시험을 통해 적어도 틀린 답이 뭔지는 알지 않는가.
그리고 그 오답들만 피해 가면 정답은 절로 보이지 안겠는가.
쓰라린 실패를 거울 삼아 달콤한 성공을 엮어내 보자.
쉴 때와 뛸 때,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잘 가려 이 5% 금리 시대를 슬기롭게 이겨 보자.
1백만원을 가지고 다음의 놀이를 한다.
주머니 속의 구슬 두 개중 하나는 빨간색,하나는 흰 색이다.
빨간
구슬에 상금이 걸려 있고,그 빨간색이 나올 때까지 구슬을 들어내는 게임이다.
가령 처음에 1백만원 중 얼마를 걸고 구슬 한 개를
꺼낸다.
만일 빨간색이면 건 돈의 두 배 상금을 타고 게임은 끝난다.
흰색이면 물론 건 만큼 잃는다.
확률 반반에 상금이 벌금의 두 배니 여기까지만 해도 유리한 게임이다.
그런데 기회가 또 있다.
만일
처음에 흰색이면 남은 돈을 모두 베팅해서 또 한 번 구슬을 꺼낼 수 있다.
이 경우 남은 구슬은 분명 빨간색이므로 두 배 상금이
확실히 보장된다.
실제로 이 같은 게임이 있다면 처음과 나중 베팅액을 각각 얼마로 배정하는 게 현명할까.
가령
처음에 1백만원을 다 걸면 어떨까.
처음이 빨간색이면 상금 2백만원을 타서 돈은 총 3백만원이 된다.
만일 흰색이면
다음에 빨강인 줄 알지만 베팅할 여력이 없으니 돈은 제로다.
따라서 돈은 각각 50%의 확률로 3백만원 또는 제로로 평균
1백50만원이다.
평균을 보면 분명 이득이다.
하지만 깡통 찰 확률이 50%니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그래서 이번엔 처음과 나중에 각각 50만원씩 나누어 거는 걸 생각해 본다.
처음에 빨강이 나오면 1백만원 상금과
함께 돈은 2백만원이 된다.
만일 흰색이면 나머지 50만원을 걸어 1백만원 상금을 타니까 돈은 1백50만원이다.
따라서 이 경우 기대치는 이 둘의 평균인 1백75만원이다.
깡통 찰 우려도 없고 기대치도 높으니 이전에 비해 절대
우위의 전략이다.
자,이번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구슬이 다섯 개 있고 그 중 하나가 빨간색이라 해 보자.
그리고
원리는 이전과 같다고 하자.
즉,계속 베팅하다가 빨간 구슬이 나오면 상금 타고 게임은 끝난다.
그런데 이번엔 확률이
낮은 만큼 상금이 2배가 아니라 8배다.
이 경우에는 원금 1백만원을 처음부터 다섯 번째까지 어떻게 나누어 걸어야 할까.
이 때도 처음에 다 걸기보다는 20만원씩 다섯 번 나눠 거는 게 더 안전하고 기대치도 높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테스트를 해 봐도 가장 많은 답이 균등 베팅이다.
구슬이 둘인 경우는 반반씩,그리고 다섯인 경우는 5분의 1씩 말이다.
또 그 다음으로 많은 답은 갈수록 베팅 금액을 늘린다는 것이다.
앞에 안 나오면 뒤로 갈수록 빨간색 나올 확률이
점점 높아짐을 감안한 전략이다.
균등 베팅보다는 한 차원 높은 발상이다.
그런데 정답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앞에는 모두 제로,그리고 막판에 1백만원을 다 거는 게 최상이다.
절대 잃지 않으니 최소한 본전이고,벌 때 크게
버니까 기대치도 제일 높다.
섣불리 먹다가 체하느니 차라리 안 먹고 말아라는 충고다.
비록 큰 걸 놓치는 한이
있어도 안 잃고 잘 지키는 사람이 최후 승자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그게 어렵다.
먹을 때 못 먹는 게
그냥 잃는 것보다 더 뼈가 쑤신다.
남들은 먹는데 나만 굶으면 배가 고프다 못해 아프다.
그래서 위험한 데 손이
쑥쑥 나가고, 그러다 보니 파이(pie)가 점점 쪼그라든다.
그러다 결국 기회는 오는데 이미 쪼그라들어 붙어 봐야 겨우 콩고물 몇
점이다.
이제 "지킴"의 소중함은 깨달을 만큼 깨닫지 않았는가.
먹으려 들지 말고 지키려고 애를 쓰자.
먹는 건 복(福)이고,지키는 게 기술이다.
미국에서 우리집 녀석이 다니던 유치원에는 "파란 의자(blue chair)"란 게 있었다.
보기엔 평범해도 그건 범상한
물건이 아니었다.
잘못을 하면 쫓겨나 앉아 조용히 반성하는 일종의 "독방"같은 것이었다.
아이 데리러 갈 때마다
혹시나 하며 그 의자쪽부터 쳐다보는 심정은 당해 본 부모만 안다.
그렇게 그 의자 단골 객(客) 생활을 마치고 간 초등학교에서도
예(例)의 말썽은 여전했다.
하루는 방과 후에 방문까지 잠그고 뭘 하는데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했다.
가서 보니
열심히 편지 한 통을 쓰는데 그 옆에는 제 엄마 싸인 연습을 한 흔적도 있었다.
사실인즉슨 여러 차례 경고에도 불구,"다마고치"를
갖고 등교했다가 압수를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 이름을 빌어 간곡한 사죄와 부탁 말씀을 적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꾸짖기엔 너무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시장을 이겨 보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비유할 때
가끔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아이큐(Intelligence Quotient)가 1만3천이나 되는 시장에게 우린 적수가 못 된다.
까마득히 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머리는 굴려서 뭣하나.
제아무리 지혜를 짜 본들 선생님 앞에 가짜 편지 내미는
초등학교 1년생 정도다.
그러니 공연히 알밤 맞지 말고 늘 순종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
하면 계좌마다 일일이 촌수까지 알아본다.
증권사 직원들 관리계좌를 삼촌,사촌,사돈의 팔촌까지 일일이 누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꼭 벌어 줘야 면이 서는 가까운 계좌는 어김없이 혼을 낸다.
벌어 줘 봐야 딱히 좋은 소리도 못 듣는 그런
멀찍한 촌수만 먹여 준다.
굳은 각오로 한 번 붙자 하면 철저히 응징하고,모르겠다 내 돈 아닌데 하고 포기하면 되려 자비를
베푼다.
촌수를 보고, 또 우리 마음을 떠 보고,합격 판정이 나야만 돈을 보태 주는 것이다.
돈을 벌어 주고 말고는
내가 아닌 시장의 권한임을 반드시 확인시키고야 만다는 말이다.
여기 어느 지점장의 고백은 전방 소총수 증권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임자가 계좌 다섯을 남기고 떠났는데 모두 유복한 사모님들 계좌였다.
그 중 네 분은 외모도 준수하고 교양도
있는 반면,유독 한 분만 말도 많고 매너도 엉망이었다.
이 분 성화를 견디다 못한 지점장은 마침내 이 계좌에만 특별대우(?)를
결심했다.
싸게 살 것도 일부러 상한가에 잡고,비싸게 팔 수 있는데도 일부러 하한가에 넣고 지점장을 업신여긴 맛이 얼마나 쓴지 한
번 단단히 보여 드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몇 개월 후 학기말 성적표를 받은 지점장은 더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그 한 계좌만 벌고,신경 써서 보살핀 나머지 넷은 몽땅 깡통을 차 버린 것이었다.
시장은 정말 천재다.
작전을 누가 하는가 보라.
모두가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들이다.
허수주문,실수주문을 수없이 넣었다
뺐다 하는 면면들을 보라.
전부 시장에 도통한 사람들이다.
시장의 천재성에 실력으론 도저히 안됨을 깨친 똑똑한(?)
이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그처럼 구차하게 돈 버는 게 싫은 이상에는 무릎을 꿇자.
생전 얼굴도 못 본 남의
친척 촌수까지 알아 맞추는 선생님을 무슨 재간으로 이기겠는가.
내 "다마고치"는 선생님이 빼앗은 게 아니라 보관 중이다.
본전 생각은 굴뚝 같지만 선생님 마음이 돌아설 때를 기다리자.
순종이 진정한 실력이다.
왕년의 야구스타 백인천 선수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야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야구를 해서 돈을 버는
겁니다"
언뜻 듣기엔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속뜻은 그렇지가 않다.
백 선수 말은 "궁극적인 목표는 돈이 아니라
야구다. 그리고 목표로 삼는 그 야구를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이 벌린다"는 것이다.
결국 운동이 업인 프로 선수지만 "업"보다 운동
"그 자체"가 중심이라는 그런 뜻이다.
사실 나도 투자라는 걸 처음 배울 때 미국 스승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자주 들었다.
돈이 필요하다든가(need money) 돈을 벌고 싶다든가(want money) 하는 게 투자의 동기가 돼선 안 된다.
그리고 투자는 게임으로,돈은 그 게임의 칩(chip)으로 여겨야 된다.
"돈 생각"이 들면 감정이 개입돼 꼭 지켜야
할 게임의 룰(rule)들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투자는 올바른 룰들을 잘 지키는 끝없는 훈련 과정이다.
주식을
하는 우리 투자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명언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철학을 가진 투자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면 매우
회의적이다.
대부분이 "그래, 나도 돈 한 번 벌어 보자" 하고 뛰어든다.
돈도 시시한 돈이 아니고 큰 돈이
어른거리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홈런 한 방을 노리니까 타석에 들어서기만 하면 크게 헛스윙을 하고 넘어진다.
우리 클리닉이 요란한 투자기법이 아닌 올바른 투자철학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런데 소위
프로(professionals)를 자처하며 남의 돈을 맡은 이들조차 이 "돈 생각" 때문에 가끔 실족한다.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건 나무라서 될 일이 아니고 낌새가 보일 때 빠져 나오는 게 상책이다.
실제로 그걸 감지하는
요령을 나도 미국 회사 시절 내 보스 한테 배웠다.
그 때 우리 업무는 선물 펀드를 조성해 최고 실력자들에게 나누어 맡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남은 건 그들의 투자외적 상황을 체크하는 소위 질적인 분석(qualitative analysis)이었다.
용어가 근사해서 그렇지 내 보스의 관심은 딱 한 가지였다.
혹시 누가 "돈 욕심"에 빠지지는 않나 하는 것이었다.
오랜 경험상 그것만큼 치명적으로 그들을 망가뜨리는 독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큰 이익을 내 주면
반기기보다 오히려 불안해 한다.
혹시 성과보수(incentive fees)가 탐나서 무리한 베팅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그럴 땐 꼭 전화를 걸어 투자 시스템이 바뀌었는지, 다른 사유가 있는지 물어 본다.
가정불화 소문이 들려도 반드시
추이를 따라가 본다.
이혼을 하게 되면 위자료가 필요하고, 그러면 분명 매매에 영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걸 봐도 넌지시 전화를 한다.
혹시 그 차 값 지불이 부담이 되지 않는지 떠보기 위해서다.
당시엔 무심코 지켜봤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일리 있는 발상이다.
"돈의 함정"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그 펀드
매니저들의 기본 실력은 어디 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돈은 무서운 것이다.
많은 분쟁과 고뇌가 그 뿌리를 더듬어 가
보면 거의가 돈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돈으로부터 초연할 수 없고,주식은 밉상스럽게 굳이 그 초연함을 요구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만 몇 발짝 멀찌감치 물러서서 한 번 쳐다보자,뭔가 길이 보이는지.
시장이 그렇게 요구할 때는
우리가 모르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지 않겠는가.
환자들이 클리닉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손절매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반토막난 주식들을 들고 와서 신비의 명약을
구하려는 그 표정들을 보면 참으로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낮은 포복도 안익히고 총싸움만 배웠으니 꼿꼿이 선채로 총알받이가 됐을 수
밖에...
대개 속사정은 이렇다.
처음 주식을 접하고 한두푼 벌면 재미가 붙는다.
사서 오르면 팔아서
남기고,내리더라도 기다리면 또 제값이 오고...
세상에 이만한 돈벌이가 없다.
왜 진작 이 좋은 걸 모르고
살았던가...
하지만 황홀한 시간은 잠시 뿐이고 마침내 한번 물리는 날이 온다.
팔자니 아깝고 본전 오기만 목메어
기다리다가 오지게 주식시장의 쓴 맛을 경험한다.
아,이래서 사람들이 손절매,손절매 하는구나.
그래,역시 손절매가
제일 중요해.이제라도 몇% 하락하면 판다는 룰(rule)을 정해야지...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손절매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한번,두번,꼬박꼬박 손실을 정리하다 보면 회의가 안드는 사람이 없다.
생살 도려니고 한두번이지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팔고 나면 올라가고,기다리면 먹었을 것을... 공연히 깨지고 나오고... 이런 바보짓이 세상에 또 어디있나.
그래,역시 기다리는 게 최고야.
이렇게 다시 병이 도지고,그러다 또 크게 당하고,결국은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클리닉 문턱을 밟는다.
손절매에 대한 우리 처방은 이렇다.
첫째,손절매는 건전한 신진대사의 일부다.
무슨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하는 그런 일이 아니다.
과감하게 변을 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버릴 건
제때 버려야 취할 걸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바둑의 사석처럼 전체 게임을 이기기 위한 포석의 일부니 만큼 손실을 절대 아깝게
여겨서는 안된다.
구체적인 방법을 논하기 전에 먼저 손절매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라는 말이다.
둘째,몇% 손절매가 가장 좋다는 절대적인 법칙은 없다.
안정되게 추세가 생기는 종목은 금액은 비교적 많이 싣되
손절매 포인트는 짧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단기에 급등했거나 변동성이 심한 종목은 반대로 비교적 적은 금액을 싣되 손절매 폭은
길게 가져가야 한다.
코스닥 주식처럼 10일 연속 상한가를 치기도 하고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드나드는 것들이 이에 해당된다.
셋째,한두 종목에 몰빵을 하며 옮겨다니면서 손절매를 논하는 건 난센스다.
왜냐하면 이렇다.
10개
종목에 분산한 뒤 각 종목당 20% 손절매하기로 했다고 치자.
전체 원금으로 보면 종목당 2%밖에 안된다.
손절매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한 종목에 집중 투자했을 때의 20% 손절매는 지켜내기 어렵다.
아무리
다짐에 또 다짐을 해도 막상 그 가격이 오면 또 한번 기다리게 돼 있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못믿을 게 인간의
마음 아닌가.
따라서 손절매 이전에 분산투자가 기본적 전제로 깔리는 건 필수라는 게 세번째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내가 정한 손절매 가격이 적절한가 아닌가는 진단이 가능하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중에 생각이 나고,회사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정도면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든지 답이 나오는데 뭘 전문가에게 묻는가.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의 손절매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이다.
일주일 굶어도 살 수는 있지만 일주일 "안누면" 죽는다.
손절매를 정말 잘하자.살아있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부산 동래 본가에는 동양화가 여러 점 걸려 있다.
창고 안에 뽀얗게 먼지 앉은 것들까지 합치면 꽤
많다.
평소 의가 좋으신 두 노인네가 이 그림 얘기만 나오면 어김없이 설전(舌戰)을 벌이신다.
어머님의 변은
이렇다.
"너희 아버지가 약주만 드시면 꼭 그림 한 장씩을 들고 오시곤 했다.
매번 선사 받은 거라 하시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전부 돈 주고 사신 거였다.
그 어렵던 시절에 저 그림들만 안 샀어도
고생이 훨씬 덜했을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결국 저 그림들 값만큼 덜 먹고 덜 입은 거다.
그간 이자까지 치자면
굉장한 액수다."
이에 대한 "피고(被告)"의 변은 늘 이렇다.
"솔직히 다 돈 주고 샀다.
그러나
취중에 두서없이 덜컥 산 건 하나도 없다.
전부 작품성이 있는 것들이다.
지금 팔아도 이자는 충분히 건지고 남는다.
두고 보라.
자자손손 큰 재산이 될 기막힌 투자다."
얼마전 김기창 화백의 타계 소식에 평소 아끼시던
산수화를 가리키며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운보(雲甫)가 떠났으니 이 그림 값이 최소 두 배는 또 올라갔다.
위대한 작품은 작가가 타계하면 값이 더 나가는 법이지."
어머님 말씀은 이랬다.
"두배 아니라
절반이라도 돈이 들어와야지."
한 분은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자산의 증가"를 보며 뿌듯해 하시는 반면,한 분은 이미 비용 처리된
항목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씁쓸해 하시는 장면이었다.
최근의 한 클리닉 사례도 결국 그 본질은 우리집 어른들의 "운보그림
논쟁"과 같다.
상세한 스토리는 이렇다.
오래 전에 샀다는 주식 한 종목이 큰 손실이 나 있었다.
그
주식을 왜 샀으며 왜 여태 손절매를 안 하셨나 물었더니 답변인즉 이랬다.
"이 회사 재무상태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보유주식,채권,부동산을 아무리 보수적으로 평가해도 이만저만한 액수는 된다.
그리고 부채라고 해봐야 아무리 부풀려
잡아도 이래저래 겨우 몇 푼이다.
그러니 매출은 전혀 없다 치고 회사 순자산 가치만 따져도 이 주식 시가총액의 최소 두 배다.
살 당시에도 그랬고,지금 평가해 봐도 마찬가지다.
제값의 반(半)도 안 되는데 어떻게 안 살 수 있겠나.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고 어떻게 손절매를 하겠나.
지금 이 주식 가격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다.
사람들이 왜 이런 주식을 탐내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조언했다.
"그 논리가 통하려면 다음 둘 중 한 가지 일이 벌어져야 한다.
하나는 회사가 보유 자산들을 매각하고 그 돈으로
배당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회사가 청산을 하고 그 청산가치를 주주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런 보장이 없다면 어떻게 그 논리로 투자 수익을 얻겠는가.
그 많은 자산이 단지
그림의 떡이라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닌가.
여자가 남편 인물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인물은 덜해도 돈 벌어 주는
남편,내용은 부족해도 잘 올라가는 주식이 좋다.
이 주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바로 인물만 좋은 남자가 싫은 사람들이다."
회사 내용도 모르고 하는 "묻지마 투자"때문에 개인들이 실패한다고 흔히 말한다.
틀린 말이다.
내용을
잘 아는 "물어 봐 투자"가 더 많이 깨진다.
오로지 남자 인물만 믿고 무작정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 인물이 돈을
벌어 오면 몰라도 안 그러면 평생 그 인물을 반찬삼아 배고프게 산다.
운보의 그림을 재산 증식을 위해 샀는지 보고 즐기자고 샀는지
각자 한 번 잘 따져 볼 때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하라고 한다.
장차 험난한 인생 여정에 겪을 고생들을 싼 값에 연습할 수 있을 때 실컷 하라는 말이다.
고생할 당시엔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그게 다 그만한 값어치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주식투자에서도 그 진리는 변함이
없다.
벌면서 시작하는 것보다 먼저 잃어 보는 것이 약이다.
1학년 때 뜨끔한 맛을 한 번 봐야 정신이 번쩍 들어
제대로 6학년 졸업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단맛을 보면 십중팔구 그게 화근이 돼 자퇴서를 쓴다.
세상에 이런 꿀단지가 있나 싶어 베팅을 키우다가 한 순간 고개를 떨구고 조기졸업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 어느
호프집을 갔더니 여주인이 너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주 와 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친구들 따라 처음 왔다니까
"그렇다면 혹시 주식 하는 분..." 하더니 잘 만났다며 넋두리를 시작했다.
"99년에 어떤 주식을 사서 80% 이익을 봤어요.
그걸 경험하는 순간 뭘로 얻어 맞은 것 같았어요.
아,내가 40년 넘는 세월을 완전히 헛 살았구나,이렇게 쉬운 길을
놔두고 왜 바보처럼 그렇게 힘들게 살았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파트 몇 채 있던 것 다 팔아 가지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그러면서 무슨 주식 이름들을 줄줄이 대는데 청산유수였다.
그래,작년 그 험한 장을 어떻게 넘겼습니까
물었더니 대답이 일품이었다.
"일년 해보고 나니까 다시 이런 생각이 들대요.
그래,그게 헛 살았던 게 아니다,다시
백팔십도 "빠꾸"하자.
그래서 다 정리하고 건진 게 이 가게 하나예요"
비슷한 경우 하나는 어느 초로(初老)의
아주머니 얘기다.
우리 클리닉 근처에 사시는 분이라 오며 가며 자주 마주쳤는데 볼 때마다 나를 피하는 눈치였다.
그러기를 1년 여,마침내 올 초에 내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재작년에 주식을 사서 처음에는 많이 벌었지요.
그 참에 여기 클리닉이 생겼는데,와서 강의를 듣고는 별 희한한 사람 다 봤다 생각했어요.
그 때는 이 주식이
4만원도 더 할 땐데 3만5천원 "쓰리바닥" 깨지면 팔라길래 정말 웃긴다 싶었어요.
지금 잘 벌고 있고 앞으로 10만원 가면 더
많이 벌 텐데 3만5천원이 무슨 소린가 했지요.
그 뒤로 주가가 빠지니까 미안해서 못 오겠고,또 그 뒤에는 너무 손실이 커서 못
오겠고...
박사님이 그렇게 한 번 들르라 해도 안 오고 있다가 결국 주식을 한 주도 못 팔았어요"
나도 투자라
하면 아픈 기억이 있다.
시카고 시절,엔.달러 선물(先物)로 거의 하루도 안 거르고 벌던 때가 있었다.
그 황홀하던
날들의 마지막 밤,아내가 깨워 일어나 보니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해 일어나 전화로 체크해 보니 계좌에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차곡차곡 한 달간 쌓인 돈이 몇 시간 잠든 사이 원금까지 몽땅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그
날 우리 둘은 아무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며 뜬눈으로 밤을 샜다.
하지만 지나서 보니 우리 인생에 그만큼 "달콤한 패배"는 없었다.
어려운 살림에 피같은 5천불이었지만 그걸 주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레슨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 쓰라림을 밑거름
삼아 이 어려운 학교를 아직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투자는 잃을 때 더 많이 배우는 법이다.
적게 잃고 배울 수만
있다면 그만큼 다행스러운 일이 없다.
얼마전에 한 기업으로부터 직원들의 중간정산 퇴직금 운용에 대한 자문 요청을 받았다.
순간 나는 머리끝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회사도 아니고 정보의 최전선에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돈도 그냥 돈이 아니라
퇴직금이라고...
정보가 많을수록, 절박한 돈일수록 더욱 가혹하게 대접하는 고약한 곳이 여기 주식 시장인데...
나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다음과 같이 긴급 클리닉을 해주었다.
빤히 내다 보이는 사고를 사전 예방하는
차원에서였다.
첫째 직업의 속성상 어렵긴 하겠지만 들려오는 모든 정보로부터 귀를 막아야 한다.
주가라는 것이 오른다
내린다 눈감고 찍어도 확률 50%는 일단 보장되는 듯 보인다.
여기에 남보다 한 발 먼저 정보를 접한다면 훨씬 높은 확률로 이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천만의 말씀이다.
과거를 돌아 보라.
수백만 명의 투자자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천문학적 숫자의 손실을 보지 않았는가.
최근에는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초스피드로 정보를 얻지만 깨지긴 역시
마찬가지다.
온갖 사이트를 헤집고 다니며 열심히 주워 들어도 많이 알수록 대개 더 많이 망가진다.
정보가 해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발상의 전환 및 올바른 투자습관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정보는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투자 클리닉이라는 별 희한한 것까지 생겼다.
둘째 퇴직금은 대부분 경우에 최후의 보루다.
도저히 잃어서는 안 되는
돈이기에 더더욱 잃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왜 그럴까.
벌어 보겠다고 그렇게들 애를 쓰는데 왜 결국은 깨지는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벌겠다는 그 집념 때문이다.
꼭 벌겠다는 욕구는 두 가지 습관으로 나타난다.
우선 주식을 사서 이익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조급증을 낸다.
그래서 느닷없이 날아든 이 행복이 행여 달아날까
안달하다가 조금만 출렁거려도 금방 팔아 치운다.
반대로 손실이 나기 시작하면 무작정 기다린다.
"이 돈이 어떤
돈인데. 설마 기다리면 곧 본전 오겠지"하며 말이다.
손익에 대한 이렇듯 "지극히 인간적인 심리" 때문에 대부분 망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인간적인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중간정산 받은 퇴직금으로 사이버 거래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께
드리는 충고 한 마디.
몇 달 전 사이버로 주식 매매 하시는 분 5백명이 모인 세미나에서 이런 비유를 한 적이 있다.
"주식투자는 마치 비행기에서 낙하산 타고 뛰어 내리는 것과 같다.
돈이 슬슬 녹다가 결국은 땅바닥에 떨어진다.
길게 하면 깡통 찬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이버 거래는 큰 돌멩이 하나를 짊어지고 낙하산 없이 그냥 뛰어 내리는 것과
같다.
다 까먹는 것은 한가진데 훨씬 더 빨리 까먹는다는 말이다"
인간은 주식을 하면 잃을 수밖에 없는 심리를
타고났다.
조물주가 원래 그렇게 지었다.
자주 쳐다볼수록,더 많이 안달할수록 "돈 잃는 심리"는 더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직장에 사이버 연결을 해놓은 것은 마치 책상 위에 슬롯머신 한 대를 올려 놓은 것과 같다.
오며
가며,일하다 말다,한 번씩 장난으로,용돈 좀 벌어 보려고.
그렇게 한 발 한 발 깊숙이 발을 빠뜨리다가 결국은 붉으락푸르락 큰
싸움이 된다.
주식은 그렇게 순간순간 재치를 발휘해서 돈을 버는 게임이 아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연구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올바른 습관이 몸에 배기 전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
정보,퇴직금,그리고 사이버 매매.
최악의 콤비네이션이다.
정말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주가지수선물이라는 것이 있다.
거래소 주식 2백종목으로 구성된 "KOSPI 200"이라는 지수의 향방을 점치는 일종의
내기다.
이 지수가 오르는 쪽으로 걸고 싶으면 선물을 매수하고,반대편이면 매도를 한다.
증거금 3천만원만 있으면
주식으로 환산해 최고 2억까지 베팅이 가능한 6.7배의 신용거래다.
최고로 실어놓으면 시장이 15%만 변해도 두 배가 되든 깡통을
차든 결단이 난다.
우리 정서에 맞는 화끈한 상품인 만큼 지난 4년간의 괄목할 성장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하지만
이 와중에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은 1997년에 1천억원 미만이던 것이 1998년에는 3천억원이나 됐다.
누가 떼돈을 벌었다느니 하는
소리는 쑥 들어간지 오래다.
실제로 소수를 제외한곤 이미 대부분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쉼없이 도전하는 신입생들 덕분에 그 열기는 여전하다.
주가지수선물의 사촌이 주가지수옵션이다.
KOSPI 200의
미래에 대한 또 다른 베팅수단이다.
주택복권이나 자동차보험을 머리속에 두면 이해가 쉽다.
복권 한장 값이나 매월
보험료에 비하면 당첨금 또는 보험금이 엄청나다는 사실이 시사하듯이 옵션도 대단한 도박이다.
지수가 오르는 쪽으로 복권(Call)을
살 수도 있고,내리는 쪽으로 보험(Put)을 살 수도 있다.
이 경우 어느 쪽으로든 지수가 많이 움직여주기만 하면 며칠만에
수십배도 번다.
안움직이면 꽝이다.
반대로 내가 콜이나 풋을 팔아도 된다.
지수에 큰 변화만 없으면
짭짤한 공돈(?)이 들어오니까.
하지만 크게 움직여 버리면 거금을 뱉어내야 한다.
어쨌든 샀다 팔았다 별 재주를 다
부려봤지만 결국은 거의가 쓴맛을 봤다.
꿈꾸던 일확천금을 거머쥔 사람은 몇 안된다.
작년 하반기부터 몰아친 코스닥
열풍 또한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주당 백만원을 장담하며 부모님 여생의 호강을 약속하던 모 투자클럽의 청년 한 사람도 일단은 기가
꺾였다.
3주만에 원금의 60%를 까먹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먹었다가 다행히 클리닉을 찾은 분도 있었다.
등록금을 다
날리고 군대로 내몰려진 대학생 얘기도 들린다.
최근에는 제3시장이란 것도 생겼다.
이름부터 으스스한데 가격제한폭도
없단다.
두 눈에 검은 띠를 두른 채 목검을 들고 일류 검객을 상대하는 것처럼 무섭다.
위험하니까 회사를 잘
알아보고 투자를 하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지난 20~30년간 돈주고 배운게 뭔가.
아는
주식에 더 많이 다친다는 것 아닌가.
맹수에게 물려 화를 당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맹수 조련사다.
호랑이가 잘
길들여졌다고 토끼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한번 맹수는 영원한 맹수다.
날카로운 이빨들은 항상 그 입속에 감춰져
있다.
가장 친하다고 느껴질 때 최고로 몸조심을 해야 한다.
위험이 크면 클수록 누군가는 떼돈을 벌게 돼있고 그런
소문에 안 흔들릴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런 시장들은 판만 깔아놓으면 웬만해선 저절로 돌아가게 돼있다.
1등 복권이
큰 복권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들러리를 서주는 것이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고위험=고수익"이라고?
그게 아니다.
천운을 타고났든지,아니면 위험을 잘 다스릴줄 알든지 하지 않는
한 고위험은 곧 고손실이다.
선물 옵션 코스닥 제3시장...
누가 얼마를 벌었다 해서 함부로 덤벼선 절대 안된다.
많이 벌면 벌수록 더더욱 까다로운 상대다.
쉽게 보는 순간 어김없이 다친다.
워렌 버펫(Warren Buffett)은 현 시대가 낳은 전설적 투자가중 한 사람이다.
버펫이 샀다는 말만 듣고도 마음 푹
놓고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난달 그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Birkshire
Hathaway)의 주가는 2년 전의 최고가 대비 절반 이상 하락했다.
20년 이상 지속되던 그의 "가치투자(Value
Investing)"에 비상이 걸렸음을 뜻한다.
이는 또한 때마침 불거진 타이거 펀드의 해체와 더불어 "저평가 기업에의
장기투자"라는 고전적 관념에 심각한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심지어 지난날 버펫의 성공이 과연 실력이었을까 아니면 연속된
행운이었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도 생겼다.
명성을 쌓기는 어려워도 잃는 건 한 순간일 수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다.
어쨌든 소위 가치 투자자들에게 버펫은 우상과 같은 존재다.
"저평가된 보물"을 찾아 아무리 쫓아다녀도 지치지 않는
건 그 대가의 성공이 등불이 돼 주기 때문이다.
또한 장이 고꾸라져 코피가 나도 두렵지 않은 건 그도 같은 고통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내가 그리는 대가의 모습은 좀 다르다.
나에게 있어 대가는 1,2등을
다투는 최고가 아니다.
이름 석자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스타들이 아니다.
늘 10등 근처에서
얼렁거리는 이름 없는 학생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과목이 일정하고 나올 문제가 다소 뻔한 학교 공부는
재주만 있으면 3년 내내 전교 1등이 가능하다.
운이 좋아 1등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반면 상상치 못한 온갖 충격이
사방에서 강타하는 시장에서의 1등은 우연으로만 가능하다.
내 시나리오 대로 시장이 잠시 놀아 주었다는 것 이상 그 1등은 달리
의미하는 바가 없다.
그 "잠시"가 꽤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밀월이 끝나고 시장이 등을 돌리는 순간 그
추락은 남보다 더하다.
이미 이름은 나 있고, 돈은 커져 있고,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린다.
경부고속도로를 3시간에 주파해 왔으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1등은 우상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다.
최악의 타이밍에 그를 만난다면 하나뿐인 내 생명이 그의 추락과 함께 묻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 속의 진정한 대가는 결코 1등을 하는 법이 없다.
까무러칠 정도로 벌어서 기자들이
들이닥치거나 TV 광고에 출연하는 일도 없다.
그저 장이 좋을 때는 예외없이 10등 근처 어딘가에 조용히 이름 석자가 올라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장이 험악할 때도 돈을 벌어주는 무슨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땐 남들처럼 잃고
앉아 있다.
그렇지만 적당히 내 줄 만큼만 내준다.
그래서 따가운 눈총을 받을 일도 없다.
등수를
보면 여전히 10등이다.
항상 관심밖에 묻혀서 살아 간다.
맑으나 궂으나 나의 대가는 언제나 10등이다.
1등을 못하는 이유는 시장이 무서운 줄을 알고 움츠리기 때문이다.
꼴찌로 처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무지를 벌써부터
깨닫고 늘 겸손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시장과 함께 호흡하고,시장이 주는 만큼만 먹고,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깨진다.
이런 사람을 대가라 불러 주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
그게 바로 현명한 투자자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다리 난간에 탄력있는 밧줄을 고정시켜 놓고 다른 쪽 끝을 발목에 묶어 낙하하는 놀이를 번지 점프(Bungee Jump)라고 한다.
보기만 해도 온몸이 찌릿찌릿하다.
거의 바닥에 꽂힐 것같은 아찔한 순간,발목의 생명줄이 힘차게 당겨 올려 준다.
죽음의 코앞까지 가 보는 그 짜릿함이 매력 포인트다.
주식에서도 이런 짜릿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엔가에 반드시 바닥은 있다는 든든한 믿음이 있기에 공포가 오히려 사랑스럽다.
그래서 아무리 험악한 장도 두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런 장이 기다려진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바닥에서 눈썹 하나 차이로 기가 막힌 저점매수 실력을
발휘한다.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자신감도 막 솟는다.
문제는 한번 크게 엮일 때다.
"어어" 하는
순간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어이없는 상황 한번으로 결딴이 나 버리는 것이다.
번지 점프도
고무줄이 평소보다 더 늘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한번이 곧바로 죽음인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두 분의 노벨상 수상자에 빛나던
롱텀 캐피털(Long Term Capital)도 그렇게 망가졌다.
수년간 엄청난 돈을 벌어 준 그들의
수렴이론(Convergence Theory)이 딱 한번 먹히지 않는 순간,그게 끝이었다.
확률적으로 당연히 수렴해야 할
스프레드(Spread)가 한동안 오히려 더 발산한 게 화근이 됐다.
이게 아닌데. 하며 손을 놓고 있다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내던지는 순간,단 몇 시간만에 수억달러를 뱉어내고 무너져 버렸다.
며칠만 더 버텼으면 됐을 것을 높은 레버리지(Leverage)로
인해 최악의 국면에서 포기하고 만 것이다.
늘어진 고무줄은 오므라들고 폭락한 주가는 반등한다.
또한 벌어진
스프레드는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 좋은 순간이 미처 오기도 전에 주저앉아 버리는 건 너무 안타깝다.
이러한 상황을 풍자한 영어 표현이 바로 " You are dead right "다.
결국 네 말대로 되긴 다 됐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너는 죽고 없다는 뜻이다.
깡통을 차고 나니까 그제서야 오르더라는 말이다.
최근 양 시장의 폭락과
함께 거의 빈사상태에 이른 환자들이 많아졌다.
반토막 난 환자들은 오히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70%,80%가
깨진 환자들이 워낙 수두룩하니까.
바닥 확인 중이니 저점 인식 확산이니 하는 말들이 범인이다.
누구 마음대로
바닥인가?
실적 호전주를 중심으로 저점매수에 임할 시기라는 엉터리 같은 얘기를 믿다가 당했다.
펀더멘털이 좋으므로
추격 매도를 자제하고 매수 관점에서 대응하란 말에 안심하고 물타기 하다가 체중만 잔뜩 불린 채 가라앉아 버렸다.
그렇게 당해
보고서도 아직도 저점매수인가?
종합주가지수가 277포인트까지 까무러칠 정도로 빠지던 기억을 그 새 잊었단 말인가?
언젠가 한번은 맞는다.
하지만 그 한번이 오기 전에 하나 뿐인 목숨이 다해 버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돈도 돈이지만 그간의 마음 고생은 누가 보상해 준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상정해 보고 각각
대비책을 세우라.
그렇지 않으면 " You are dead right "가 될 수도 있다.
우리 투자 클리닉으로부터 자신의 주식 병을 진단받은 환자는 줄잡아 1만명쯤 된다.
부지런히 치료받고 새로운 투자 인생을 펼쳐
가는 분들을 보는 것이 낙이다.
적어도 그 동안 뭐가 잘못돼 왔었나를 절실히 깨우치는 그 모습들만 봐도 흐뭇하다.
침통하기만 하던 얼굴에 살며시 번지는 엷은 희열의 미소들이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약도 주사도 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메디컬 닥터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수 년간의 연구와 실전,깔끔하게 정리된 논리,적절한 비유 및
사례,다양한 통계.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걸 바쳐서 목이 쉬고 땀에 젖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한다.
불행했던 그들의 주식
인생에 일대 전기를 마련해 줘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개원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환자가 아니라 우리 투자 전문의 한 사람이 질린 표정으로 회의중인 내 방에 불쑥 들어온 것이다.
아주 심각한 환자
한 분이 있는데 두 시간을 꼬박 해도 도저히 치료 불가라는 것이었다.
이대로 그냥 보내면 큰일 날 것 같은 예감이 드니까 한 번
만나 보라고 했다.
나는 회의를 급히 중단하고 그 분을 내 방으로 모셨다.
중년 부인이었다.
날만
새면 늘 보고 사는 게 어두운 얼굴들이지만 이 분의 경우는 달랐다.
침통의 단계는 이미 아니었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까칠한 피부,초점을 잃은 게슴츠레한 눈매,흐트러진 머리카락.
넋이 나갔다는 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떠오르지 않았다.
순진한 박 과장이 당황해 할만도 했다.
리스크관리니 저점매도니 하는 이론이 먹혀 들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슴을 쥐어뜯다,한숨을 쉬다,울다 말다,띄엄띄엄 말을 이어 가는 부인의 사정은 이러했다.
남편이 남기고 간 주식을
정리하러 간 것이 계기가 됐다.
돈만 갖고 오면 벌어 주겠다는 말에 정리는커녕 오히려 본격적으로 돈을 넣기 시작했다.
손실을 보자 더 갖다 붓고 또 붓고.
나중에는 빚까지 여러 차례 얻어 썼다.
결국 반 년 만에 원금의
95%를 날리고 평가로 3천만원 남짓 달랑 남은 처지에서 수소문 끝에 클리닉을 찾은 것이다.
죽 들어 보니 위험관리의 ABC도
모르는 증권사 직원들의 무지와 교만이 가파른 추락을 부채질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번다,기다리면 반등한다,너무 빠졌으니 팔면 안
된다,이제 물타기 해야 한다,빨리 만회하려면 신용을 써야 한다,돈이 눈에 보이니 미수를 찍어야 한다.
환자 중에서도 최상급
중환자들이 고객까지 진짜 환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먹여 주고자 하면 깡통 채우고,살려 주고자 하면 먹여 주게 된다는 진리를
냄새라도 맡았던들.
사모님,이러시다간 진짜 돌아가시겠습니다.
돈이야 없다가도 있는 거지만 생명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지 않습니까.
하루 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으십시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어머니가 강해지셔야지요.
그리고 이제 주식은 그만 하십시오.
이 돈으로 본전 찾으려다간 그나마 남은 돈도 다 잃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번 알아 보겠습니다.
클리닉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고점매수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안했다.
그 대신 내 주변에 도움을 청해 카운슬링을 주선해 드렸다.
막막해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 누가
옆에 있다 생각하니 너무 고맙다며 사모님은 오늘도 목메인 소리로 통화를 한다.
몸이 아파 병원에서 전화를 받는다는 말씀을 들으니
증권쟁이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죄스럽다.
많은 투자자들과 증권사 직원들을 위해 사모님의 동의를 구하고 이 글을 쓴다.
돈보다 사람이다.
나는 바둑이 왕초보다.
군대 말년에서 이후 하숙까지 내리 몇 달 두어 본 게 거의 전부니 급수를 논하기조차 부끄럽다.
이처럼 형편없는 실력에 비해선 나는 누구보다 바둑을 좋아한다.
어디서 바둑알 또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본능적으로
다가가서 기웃거리니 말이다.
그리고 한 번도 맞추진 못했어도 신문 한 귀퉁이 묘수풀이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실력은 여전히 바닥이지만 최근에는 이 바둑이 전보다 몇 배로 흥미롭다.
바둑채널,인터넷바둑 등으로 더 가까워진
바둑이 쳐다보면 볼수록 그 이치가 주식투자와 똑같기 때문이다.
바둑의 하수나 투자의 하수나 하수가 되는 비결은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무슨 얘긴지 하나씩 보자.
첫째,바둑의 고수는 철저히 아생연후살타다.
내가 우선 살고
난 뒤에 상대를 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마가 잡혀 크게 깨지는 법은 좀처럼 없다.
얄미울 정도로 잘 피해 다니고
져 봐야 겨우 세 집 반이다.
코피는 나도 코뼈는 깨지지 않는다.
반면에 하수는 생사불문살타다.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큰 거 한 놈을 잡으러 나선다.
지옥 끝까지 좇다 보면 염라대왕 앞에 와 있는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손절매도 모르고 대박만 좇다가 최고의 고수,위대한 시장에 KO패 당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대우사태에 반 토막,미국시장과 투신문제로 깡통.불계패다.
둘째,고수는 냉정하다.
어차피 잡힐 놈
같으면 그 놈만 주고 만다.
단 한 놈의 응원군도 더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고수들은 사석이 별로 없다.
반면 하수는 정이 많고 의협심이 강하다.
한 놈이라도 우리 편이 잡히는 걸 못 참아 낸다.
한 놈을
살리려고 또 한 놈을 보내고 또 몇 놈을 보내고.
결국은 소대가 전멸한다.
12만원에 매수한 S기술을 10만원에 또
사고 8만원에 물타기하고 6만원에 또 물타기하고.
주는 김에 키워서 후하게 줘 버린다.
망하는 김에 깡그리 망해
버리는 것이다.
셋째,고수는 집념이 없다.
머리 아프면 손을 빼고 다른 데로 간다.
시간 나면
돌아와서 다시 보고 그래도 복잡하면 또 딴 데로 가 본다.
그런데 하수들은 집요하다.
한 곳이 해결되기 전에는 그
넓은 반상에 다른 곳은 쳐다도 안 본다.
1만원에 산 H건설이 본전 되기 전에는 수백 종목 다른 주식은 안중에도 없는 것과 너무
흡사하다.
수십 배,수백 배 뛰는 놈들이 수두룩한데도 3천원까지 내려와 버린 그 놈의 H건설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다.
만원이 되는 날까지는 전신마비 상태다.
마지막으로,고수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는 게임에서 더
많은 걸 배우는 줄을 알기에 오늘 패배가 두렵지 않다.
오늘 지고 앞으로 이기면 되니까.
이에 반해 하수는 지는
것이 싫다.
따라서 상대를 골라도 늘 하수만 고른다.
그러니 실력이 늘지 않고 만년 하수다.
주식도
꼭 한가지다.
하수는 언제나 내가 사면 상투고 내가 팔면 바닥일 것처럼 불안해서 고점매수,저점매도는 꿈도 못 꾼다.
그래서 절대 안 지기 위해 먹으면 얼른 팔고 깨지면 기다리다 보니 수면 위로 코 한 번 못 내밀어 보고 늘 잠수상태다.
주식이 뭐 별난 게 아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높은 곳에 있지 않다.
골치 아프게 뭘 고매한
경제학이니 기업분석 책을 꺼내 놓고 씨름하는가?
평범하게 세상 사는 이치로부터 배우라.
바둑판을 꺼내 놓고 검은 돌
흰 돌을 번갈아 놓아 보라.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되던 날 나는 마침 미국 출장 중이었다.
시차 때문에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코리아 어쩌구 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외신을 전하는 TV뉴스였다.
"Summit Meeting (정상회담)"운운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이 엉망이었다.
"킴대영 앤드 킴영일."
두 정상이름의 발음이 완전 엉터리였다.
"중"과 "정"의 "J"자를 모두 "Y"로 착각한 것 같았다.
금방 바로잡겠지 했는데 야속하게도 짤막한 사실 확인
그게 전부였다.
타국에서 엉겁결에 맞이한 낭보에 반가운 마음은 커녕 씁쓸한 입맛만 돌았다.
"우리는 언제 대접 좀
받고 살아 보나...
최소한 대한민국 대통령 이름 정도는 들어봤어야하는 것 아닌가.
아시아 주식시장 뉴스도 매일
닛케이(Nikkei),항셍(Hang Seng)만 들먹거려 사람 열 받게 만들더니...
도대체 한국은 언제쯤이나 당당한 맞수로 한
자리 떡 차지하나..."
한토막 기술이라도 더 배워 오려고 열 몇시간을 날아간 미국 땅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이차 저차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바닥 운운하던 시장이 땅굴을 팠다.
미국 기침 한번에 우리는 폐렴에 걸려버렸다.
수백억달러를 꿔오는 수모를 겪으며 헉헉대는걸 본게 엊그제인데 그새 또 악악거리는 소리들을 듣는다.
실력이 달리니 늘
그렇다.
체력보다 수혈로 회복했으니 힘이 없다.
그러니 무디스(Moody"s)한테 또 한방 맞고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 것인가.
이제는 더 이상 길이 없다.
수준을 높이고 체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투자자가 깨먹은 돈을 왜 정부가 물어 주는가.
1%라도 더 받으려고 다들 거기 갖다 맡겼는데...
자꾸 물어주면 영원히 부잣집 외아들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두서 없고 무모한 백성들이 되고 만다.
망하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책임은 스스로가 떠안는 훈련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날만 새면 실적호전,내재가치,저점
운운하는 소위 전문가들도 이제 좀 깨야 한다.
당장 내일의 내 앞일도 모르는데 무슨 거창한 예측을 그리 열심히들 하는가.
그만큼 틀리고 그만큼 울렸으면 족하지 않은가.
내가 아는 한가지 스토리를 고집하지 말고 내가 모르는 1백가지
시나리오에 유의하라.
그리고 그 가운데 최악의 상황들을 두고 그 대비책을 일깨워 줘라.
미국을 보고 느끼는게
없는가.
거대한 사기극소리를 들으면서도 수억달러를 들여 "Y2K문제"를 연구하는 모습을 보라.
그런 진지함이 있기에
세계 최강국 소리를 듣는다.
나는 모른다 하는 겸손함이 그들을 창의적이고 탐구적인 민족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
개인들도 이제 한차원 더 성숙해야 한다.
언제까지 70~80% 원본을 까먹고 망연자실하는 우(愚)를 되풀이하려 하는가.
그 만큼 당하고도 아직 아는체 할 기력이 남아있는가.
위험인식이 없는 사람은 백혈구가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한번 병들면 죽음이다.
위험관리와 생존의 중요성을 차제에 다시 한번 상기하라.
참 어려운 시기가 또
왔다.
옛날의 그 악몽이 되살아 날까 두렵다.
이번이야말로 한단계 도약할 때다.
이제 진짜로 실력을
키워야 할 때다.
진정한 실력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예측은 신(神)의
영역이고,대책이 우리 영역이다.
연속극은 웬만해선 다 재미있다.
사람사는 얘길 하기 때문이다.
김수현작 "불꽃"이란 연속극이 있었는데
만남,이별,기다림, 그리고 다시 만남으로 막을 내린다.
각각 약혼자가 있는 주인공 두 남녀는 우연히 해외여행중에 눈이 맞아 몰래
계속 만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현실의 거센 파도에 밀려 미리 약속된 각자의 길로 뒷걸음질친다.
시선은 여전히
서로를 향한 채...
쉬운 만남에 비해 이별은 너무나 큰 고통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별보다 더 힘든 건
기다림이다.
E메일 박스를 열때마다 문득문득 저며오는 은은한 기다림은 고통 그 이상이다.
끝내 두 가정은 파경을
맞고 서로의 이혼소식을 접한 두 사람은 그 길로 다시 만나 못다한 불꽃을 피운다.
그런데 TV 연속극보다 더 재미난 것이 주식
연속극이다.
8백만 주인공들이 피우는 불꽃은 연인들의 사랑보다 더 뜨겁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클라이맥스다.
애인은 버려도 주식은 못버리는 것이 그들의 주식사랑이기에 또 내일 스토리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대부분이 이별보다는 사랑을 선택하여 뼈아픈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만신창이가 되어 전신이 붕대로
휘휘감긴 지금에도 그 정열은 변함이 없다.
그러기에 나락의 끝까지 그 사랑을 부둥켜 안은채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별이란 단어를 잊어버린 것처럼...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입술을 깨물며 모진 이별을 선언하는 이들이
간혹있다.
훌훌 다 털고서 한동안 잊고 지내노라 말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고독은 대개 오래가지 않는다.
사랑이 코앞에서 출렁출렁 손짓하는데 더 이상의 기다림은 고통을 넘어 고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다시 불타고 활활타는
그 불꽃속에서 그들은 그 사랑과 함께 재가 된다.
실제로 나에겐 거의 재만 남은 친구가 하나있다.
지난 십수년간
하루도 쉬지않고 뜨겁게 주식과 열애를 나누었던 친구다.
며칠전에 전화가 왔는데 하는 말이 걸작이다.
"니 강의를
들을 때마다 다짐을 해 보는데도 막상 부딛히면 도저히 안된다.
이번에도 니 말대로 진작에 손절매하고 쉬었어야 되는 건데
고집부리다가 완전히 망했다.
반동가리(토막)난 상태에서 또 6일 연속 하한가 맞고 나니까 오늘 한번 상한가를 쳐도 아무 느낌이
없다.
원칙이고 뭐고 지킬라해도 인자(이제) 필요도 없다.
계란을 나누어 담을라 해도 남은 계란이 있어야지.
바구니 안에 보니까 인자 계란이 한개밖에 없다"
주식투자는 한편의 긴 드라마다.
만남과 이별과
기다림의 묘를 조화롭게 엮어내는 자에게만 해피엔딩이 있다.
내일이 당장 마지막회도 아닌데 뭘 그리 집착하는가.
그렇잖아도 인생이 고통덩어린데 왜 주식마저 날 괴롭히게 내버려 두는가.
주식이 괴롭히면 주식을 버리자.
힘들고 지칠때는 윤시내의 노래를 부르자.
"...지쳐버린 내 영혼 조금씩이라도~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벗어나고파~"
UFO는 미확인 비행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s)를 줄여 쓴 말이다.
외계인들이 타고 오는
비행접시를 두고 우리는 흔히 UFO가 나타났느니 한다.
그런데 주식이나 선물 투자자들에게 있어 UFO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Unbelievably False Orders", 즉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못 낸 주문들"이란 뜻이다.
모든
지혜를 짜서 내린 결정들이 지나 놓고 보면 전부 악수라는 데서 나온 죠크(joke)다.
생각해 보면 우리 투자자들이 매일 열심히
하고 있는 건 바로 이 UFO를 날리는 일이다.
샀다 팔았다, 취소했다 정정했다...
그 눈물겨운 노력이 모두가
허사다.
돌이켜보면 마치 "돈을 잃기 위해" 그 애틋한 정성을 쏟았던 것 같아 더욱 허탈하다.
진정 UFO는 외계가
아니라 증권사 단말기에서, 안방 컴퓨터에서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온 통계에 의하면 현재 활동 중인 주식 계좌는 800만이
넘는다.
그 동안 폐쇄된 계좌까지 포함하면 작게 잡아도 천만 계좌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 20년간 계좌 당 평균
손실액을 최소 천만 원이라 쳐도 총손실은 자그마치 백 조 원이다.
최상의 선택이라 믿고 낸 주문들이 빚은 어처구니 없는 결과다.
신속, 정확한 정보 수집을 위해 동분서주한 보답이 고작 이거다.
바닥에 사서 상투에 팔겠다고 최대한 머리를 굴린 게
이 모양이다.
밤마다 고심하고 아침에 눈 뜨기가 무섭게 간밤 Dow Jones며 NASDAQ을 체크했는데...
일간지, 경제지를 글자 한 자 안 빼고 다 읽어 왔는데...
남보다 1초라도 먼저 알려고 종일 인터넷을 헤집고
다녔는데...
한 시간 빠른 8시 뉴스 보고, 9시 뉴스 또 보고...
순풍 산부인과도 안 보고 증권뉴스를
봤는데...
밤새워 유럽 장도 지켜보고 미국 장도 보고, 날새면 한국 장도 보고 일본도 보고 홍콩도 봤는데...
그렇게 책도 많이 읽고 메모도 열심히 했는데...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충분히 빠졌을 때 샀고,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상황에서 팔았는데...
내재가치 대비 과도하게 저평가 된 상태에서 매수했고, 거품이라 해서 매도했는데...
이만큼 배웠으면 웬만큼 다 아는데...
뭐가 잘못됐나...
정말 그 해답이 궁금하다...
해답은 간단하다.
완전 헛고생만 하고 전부 거꾸로 한 것이다.
거시경제 지표를 잘 읽어야 된다.
기업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저점매수, 고점매도로 대응하라.
날만 새면 듣는 말이다.
강산이 아무리 바뀌어도 영구히 회자될 명언(?)들이다.
너무 지당한 얘기 아닌가.
공부한 바를 토대로
최대한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데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맞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몇 푼씩 벌기는 한다.
장이 마침 나의 수중에서 놀아 주는 몇 차례에 한해서는...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 모두가
UFO다.
출렁거리고 치솟고 내리꽂고 난리를 칠 때 한 방에 가 버리니까.
수도 없이 가슴앓이를 했으면 그거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게 많은 수업료를 갖다 바쳤으면 이제 졸업을 하자.
그 졸업식 축사는 간결해서 좋다.
"수강생 여러분! 그간 수고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건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돈을 까먹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UFO 날리는 법을 배우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졸업 후엔 여태 배우신 것 거꾸로만 하시면 됩니다.
아셨죠?
감사합니다."
선물(先物) 하는 사람치고 리쳐드 데니스(Richard Dennis)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터틀(Turtles)이라는
별명이 붙은 일군(一群)의 신화적인 선물 트레이더들을 길러낸 분이다.
그 터틀 중 한 분이 나의 스승이신데,그가 들려 준 터틀의
탄생과 성장은 이렇다.
80년대 초반에 데니스 씨는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많은 지원자 가운데 15명을 선발했다.
도박사,아동용 게임 프로그래머,농부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금융시장에 대해 문외한인 이들에게
그는 2주 동안 간단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곤 적은 금액으로부터 곧바로 매매를 시켰다.
각국의
주가지수,금리,환율,금,곡물,원유(crude oil)등 모든 종류의 선물을 망라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교육 외에 그가 해 준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외부로부터 이들을 철저히 차단시키는 일이었다.
사무실 한 칸을
마련해 주면서 첫 1년 동안은 매일 거기 모여서 매매하라고 시켰다.
바깥의 누구와도 어떤 대화도 접촉도 갖지 말고 배운 대로만
하도록 당부했다.
그는 우선,수많은 시장을 일일이 다 알 수 없으니 단지 숫자들의 움직임으로 보라고 가르쳤다.
정보나 의견의 수집은 원칙 준수에 방해만 될 뿐임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Follow the trend.(추세에 순응하라)
Be humble.(시장 앞에 겸손하라)
Don"t
overtrade. (무리한 매매를 삼가라)
바로 이 세 가지였다.
시장을 예측하지 말고 가는 대로 따라 가며
무리하게 지르지 말고 손절매를 잘 하라는 것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터틀이 준비하고 있는 일은 손절매였다.
포지션을
취하는 순간 손절매 가격을 정하고,그 가격이 오면 사뿐히 정리하는 게 일이었다.
모든 시장이 잠잠하게 별 움직임이 없을 땐 잡지를
뒤적이거나 탁구를 쳤다.
먹고 있는 포지션은 실컷 먹을 때까지 그냥 기다리면 됐다.
그러다 마침내 반대로 가면 상당
부분 뱉어내고 나오면 됐다.
숫자에 밝거나 컴퓨터를 좀 만지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덜 잃고 덜 뱉어내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3년을 지내면서 그들은 경이적인 수익을 올렸고 스승과 함께 큰 부자가 됐다.
그들은 단지 앉아서 기다리기만
했고,시장이 다가와서 보태 준 돈이었다.
그들이 더욱 신화적인 이유는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 실력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돈 버는 방법이 아니라 돈 잃는 방법,돈 뱉어 내는 방법을 배운 덕택이다.
사격술보다 포복을 더 철저히 가르친
현명한 스승 덕분이다.
데니스 씨의 개인적인 일화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지션이 많을 때 밤새 혹시 무슨 변고가
있을까 해서 야간 파수꾼(?)을 고용한 적이 있단다.
세계 시장에 특별한 이상 징후가 보이면 전화만 한 통 해 달라는 것이었다.
2년 동안인가 단지 두 번 전화를 받았는데 그 직원 급료의 수백 배에 해당하는 손실을 피했다고 한다.
그렇다.
투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쭉정이 여섯 장을 맨 먼저 갖다 놓는 것이다.
피박을 피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 놓고 뒷손 잘 맞으면 그 때 대박을 터뜨리는 거다.
홍단,오광등 화려한 그림을 쪼면서 쌍피를 함부로
던지면 금방 다 털리고 뒤에 앉아 사과나 깎는다.
잘 잃는 사람이 결국에는 딴다.
왼발의 달인 하석주의 중거리 슛은 볼 때마다 통쾌하다.
그물이 철썩하는 순간 온천지가 들썩거린다.
특히 상대가
일본이면 더하다.
안방에서,서울역에서...
뛰고 구르고 소리치고...
보통 난리가 아니다.
붉은 악마들의 신나는 응원은 그 순간 우리의 흥을 더해 주는 조미료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환희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은 역시 신문선씨의 고함소리다.
"꼬~올! 꼬~~~올!"
체면이고 뭐고 다 잊은 채 마음껏 토하는 그
열광에는 코끝이 찡하다.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모습은 더 이상 해설자가 아니다.
이성을 잃은 동네 아저씨일 뿐이다.
골인 되고도 최소한 15초는 "꼬~올"을 외쳐야지 그 다음 말문이 이어진다.
축구를 향한 그의 이러한 열정이 있어
경기는 더 흥미롭고 하선수의 골은 더욱 빛난다.
주식도 해설자가 없으면 무성영화를 그림만 보는 것처럼 냉랭하다.
쉴
틈없이 읊어주는 열렬 변사들이 있어 흥미로운 것이다.
전망에서부터,생중계,총정리,녹화중계까지 종일 해설을 붙여주니 갑갑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그 정열은 수백만의 손님을 붙들어 놓는 큰 힘이다.
장이 뜰때는 마치 열 골을 달아 넣을 듯
흥분한다.
꼬꾸라질 때는 미드필드 부진,문전처리 미숙 등등 친절하게 이유를 찾아다 준다.
영 시들시들한 국면에는
체력저하,심리위축...하며 실망도 함께하고 위로도 해준다.
선수별 특기도 알려주고 팀 전체 대세판단을 해주기도 한다.
어느 한 게임도 전과 같지 않으니 날이면 날마다 할 말이 있다.
그래서 늘 열심히 말을 하다보니 틀릴 때도 많다.
기량향상으로 낙승이 예상된다고 했는데 내리 몇 골 먹고 졸지에 반토막이 나기도 한다.
전강후약의 전형적 약세장
운운했는데 전반전부터 펄펄 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해설가는 우리 투자자들의 영원한 친구요 위안자다.
그들을 쳐다보다 잠이 들고 날 새기가 무섭게 리모콘을 집어 그들을 찾는다.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답답할 때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는 건 당연지사다.
따라서 항상 전문가들의 입을 주시하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는 한다.
문제는 그들에 대한 믿음이다.
그들 말대로 시장이 움직이고,그들을 따라가면 돈이 보일 것이라
믿는 어리석음이다.
마치 목사님을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것과 흡사한 우매함이다.
아무리 지겹게 패가 안풀려도 의지할
곳은 아무데도 없다.
철저한 위험관리만이 대안이다.
해설자는 그냥 해설자일 따름이다.
하선수의 멋진
골과 한국팀의 승리를 목타게 기다리는 열성팬의 한 사람일 뿐이다.
주가가 올라 행복하길 소망하는 수많은 투자자중의 하나일 뿐이다.
단지 열정이 남다르고 아는 바가 풍부함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열광하고 열망해 줄 뿐이다.
그들 자신이 공을 차고
시장을 좌우하는 건 아니다.
수많은 곡을 쓴 고이봉조 선생님도 당신 자신은 남부럽지 않은 음치였다.
구수한 목소리로
실제 국민의 심금을 울린 이는 가수 현미다.
신문선씨도 해설은 진정 명물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승리를 안겨주는 건
하선수의 그림같은 슛이다.
주식도 한가지다.
주식 전문가는 일종의 교사요 엔터테이너(entertainer)다.
그들의 해설은 알기 위해 듣고 재미삼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조바심 내는 마지막 승부는 선수들이 지어준다.
돈을 놓고 뛰는 개미군단,기관포부대,외인구단,총 3백만의 선수들 말이다.
그들이 잘 싸워줘야 돈이 된다.
해설자는 운동장 밖의 구경꾼일 뿐이다.
선수와 해설자를 혼동하면 안된다.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는 타임머신으로 과거와 미래를 부지런히 넘나드는 영화다.
여기서 악역
밥(Bob)은 미래로부터 책 한 권을 몰래 감춰와 50년 전의 자신에게 갖다준다.
바로 스포츠 올머낵(Sports
Almanac), 각종 경기결과를 모은 통계집이다.
젊은 밥(Bob)은 이를 이용,스포츠 도박으로 거부가 되어 한동안 군림한다.
패를 알고치는 고스톱의 엄청난 위력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자본 회사를 골라 소위 주식으로 "작전"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단 한번 성공으로 평생 팔자를 고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싫은 대다수 선량한 투자자들은 늘
미래가 궁금해 안달이다.
멀쩡한 그래프에 요리조리 선을 그어 쑥대밭을 만들면서까지 내일을 점쳐본다.
전문가 뺨치는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정보로 경기전망도 해본다.
700번 유료전화도 걸어보고,정 답답하면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기도 한다.
만일 진짜로 타임머신이 발명되면 이젠 만사를 제쳐놓고 거기가서 줄을 설 것이다.
그리곤 거금의 탑승료도 마다 않고
"미리 보는 주가"를 향해 미래로 날아갈 것이다.
그래서 신기한 미래세계 또한 주식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1분 뒤라도 미래를 볼 수가 없다.
불법이 아니고선 미리 주가를 아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타임머신을 타고 다니는 신비로운 인물들이 있다.
마치 미래를 보고 온 듯이 예측이
현실로 되고 그래서 영향력이 인정되는 사람들 말이다.
예를 들면,최근 보도된 "그린스펀(Greenspan)을 비롯한 미국의
4인방"같은 이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계속 잘 맞추고,그럼으로써 영향력을 지속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한번 논리적으로
따져 보자.
가령 "초반엔 공급물량 과다로 조정,물량소화후 후반에 강한 상승"이라는 예상을 보자.
만일 진정 힘있는
인사가 그 말을 했다면 시장은 절대로 초반에 조정을 안 받는다.
어차피 상승할 장인데 조정받는다 할 때 사 둬야지 하는 심리로
초반부터 뜬다.
또한 "전강후약의 전형적인 약세장이므로 반등시마다 매도하라"는 충고는 어떤가.
마찬가지 논리로 이
경우 절대 반등은 없다.
그 사람 말에 겁먹은 투자자들이 반등도 하기전에 마구 갖다 때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강후약이 아니라 전반부터 약세다.
그러면 "지금 1만원짜리 주식이 수익성 호전으로 연말엔 3만원 갈 것"이라는
예상은 과연 실현될까.
결코 그렇게 안된다.
왜냐하면 그말이 나오는 순간 곧바로 3만원을 향해 돌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가 생각해보면 이 주가는 결코 3만원까지 갈 수도 없다.
3만원이 되면 때릴 사람들이
많은데 기다리면 나만 바보다.
그래서 2만5천원에,또 그 보다 더 낮은 가격에 영악한 매도세력들이 포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향력있는 전문가들은 바로 그 "영향력"때문에 예측이 빗나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측이 점점 틀림에 따라
영향력은 줄어들고 시장은 또 다른 "족집게"에게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그도 역시 족집게로 자리매김 하는 그 순간 "헛집게"로
미끄러져 내리고...
그렇게 쳇바퀴는 계속 돌아가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주식시장은 참으로
아이러니컬(ironical)한 곳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은 맞출 수가 없으니 힘센 바보다.
말한 대로 딱 들어맞는
사람은 영향력이 없었다는 증거니 힘없는 천재다.
그렇다면 둘다 갖춘 이는 없는가.
탄탄한 근육질의
하바드(Harvard)수석 졸업생 말이다.
타임머신(Time machine)의 유일한 탑승자,바로 시장이다
얼마전 모기업 대표와의 저녁식사에 우연히 초대된 적이 있다.
화제는 만인의 친구인 주식으로 왔고 나는 위험관리 어쩌구 떠들며
밥값을 했다.
한참 듣던 그 사장님은 수첩을 꺼내시더니 아예 메모까지 해가며 신기한 듯 경청을 하셨다.
그러던 차에
참석자들의 고견을 구한다며 고충 하나를 털어 놓으셨다.
"공직에 있다가 몇 달전에 부임했는데 그간 회사가 크게 번창했다.
조직도 커졌고 인원도 많이 늘었다. 영리법인은 아니지만 매출이 엄청나게 증가해서 회사에 돈이 넘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인센티브(incentives)를 좀 주고 싶은데 명분이 없다. 기존 직원들이 딱히 뭘 잘해서 돈이 들어온 게 아니다. 그저 붐(boom)이 일어
뜻밖에 잘된 것뿐이다. 최근에 들어온 신입직원들은 더더욱 명분이 없다. 도대체 무슨 이유를 들어 보너스를 줄 것이냐"는 게 그 사연이었다.
그 행복한 고민에 해결책이 궁한 듯 잠시 침묵이 흘렀고,덤으로 초대된 내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제 생각엔 너무
확실한 명분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 그들이 있었다는 게 바로 그 확실한 명분입니다. 운도 실력입니다. 부잣집 자제가 어디 뚜렷한 명분이
있어 부자로 삽니까. 그런 부모를 만난 것도 복이고,따지고 보면 그게 그들 실력의 상당 부분입니다. 주식해서 크게 버는 것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꼭 무슨 정당성이 있어서가 아니지 않습니까. 마침 그 때 그 주식을 내가 들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때마침 돈이 넘치는
시기에 직원으로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격은 충분하고 남습니다.
따지고 들면 끝이 없습니다. 일생에 몇 번 없는 짜릿한 행복,이 기회에 실컷
즐기게 해 주십시오"
내 변이 끝나자 사장님은 벌어진 입을 다불며 "아,그렇군요..."하고 목이 타는 듯 술잔을 집으셨다.
후일담이지만 그날 이후 그 분 소개로 우리 클리닉을 찾아왔다는 환자들이 꽤 있었다.
보너스는 어찌 됐는지 궁금하다.
"인생은 고(苦)"다.
바탕색이 고통색인 도화지에 군데군데 행복의 점이 찍힌 그림이다.
경쾌한 듯해도
바닥엔 짙은 우수가 깔린 백지영의 "슬픈 살사(Sad Salsa)"같은 노래다.
생각해 보라.
행복에 겨워 환호를
올리는 게 다 합해봐야 몇날이나 되는지.
매년 생일날 하루 축하받고,휴가때 한 번 여행가고,3년을 빡빡 기어서 제대날 활짝
웃고,몇년을 씨름해서 합격날 한 잔 먹고,몇달을 뒤뚱거려 출산을 맞고,몇시간을 쳐서 오광한번 나고...
가끔씩 오는 행복을
양식삼아 잔잔한 고통들을 견디어 나가는 그게 인생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는 그 행복을 당당하게 맞고 마음껏 즐겨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온 몸에 흠뻑 적셔야 한다.
백년도 채 안되는 짧은 생을 사는 대가이기에 행복할 때 실컷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행복이 두렵다.
행복해야 되는 이유가 있어야 되고,그게 없이는
행복한 게 오히려 불안하다.
주식하는 이들은 특히 더 그렇다.
1년이라야 평균 두세달 반짝하는 장을 이유를 찾다가
그냥 흘려 버린다.
몇년에 한번씩 까무러치게 오를 때는 가치를 따지다 그 아까운 행운을 놓친다.
주식은 수백만의
고뇌와 환희가 뒤엉켜 있어 그 자체가 인생이다.
인생을 살듯이 주식인생도 그렇게 살면 된다.
먹여줄 때 양껏 먹고
그 뱃심으로 나머지 세월을 견디며 다음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먹을 때 못 먹는다.
먹을 때
못 먹어 놓으면 요즘처럼 굶을 때 너무 배가 고프다.
행복할 때 실컷 행복해 하자.
신혼의 젊은 주부 A씨의 주식얘기는 평범하지만 너무 솔직해서 감동적이다.
어떤 사연으로 급기야 클리닉을 찾게 됐는지 한번
들어보자.
초등학교 앞에서 남편과 조그만 가게를 하던 A씨는 주식의 "주"자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주식을
하고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손님만 없으면 요때다 하고 방으로 뛰어가는 남편을 보며 점차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래서 남편을 사부로 모시고 틈틈이 묻고 배우며 밤에는 컴퓨터 사용법도 익혔다.
웬만큼 기본이 되자 이제 경제신문을
구독했다.
아침마다 기사를 읽어주고,때때로 남편대신 매매까지 할 수 있게 된 A씨는 더없이 기뻤다.
조금씩 쌓여가는
돈보다는 날로 풍부해지는 지식에 더 가슴이 뿌듯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A씨를 행복하게 만든 건 소위 "대화의 수준"이었다.
이건 하나에 삼백원이고,저건 하나 팔면 몇십원 남고. 시금치 한단에 얼마고,이달은 전기세가 얼마 더 나왔고.
지겹던
일상의 대화가 어느 날인가부터 그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나스닥,다우존스,금리인상...
자고 나면 우선
미국경제를 평하고...
위안화 평가절하,일본 엔화강세,국제유가 급등...
세계경제를 논하며 그 파장을 걱정하고...
IMT2000사업,투신권 구조조정,남북경협,금리하락...
생전에 입에 담지않던 용어들을 구사하는 자신이 믿기지
않도록 대견해보였다.
A씨의 말을 그대로 빌면 "주식을 처음 할 때는 너무너무 황홀했다"는 것이다.
거기까지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희 클리닉을 찾아오셨습니까?"
A씨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머리는 꽉 찼는데 배가 홀쭉합니다.
원금을 거의 다 까먹어 버렸습니다"
장이 빠지고 남편이 손실을
보자 자신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마침 입문하던 시점이 장이 반짝할 때라 대접은 처음부터 짜릿했다.
그간 닦은
내공(?)이 헛되지 않았구나 여긴 그녀는 남편 몰래 은행대출을 받았다.
또한 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무공을 과시하며 몇백을
위임받았다.
그리곤 남편계좌외에 은밀히 딴 계좌 하나를 텄다.
하지만 무허가 펀드메니저 A씨에겐 눈꼽만한 두려움도
없었다.
공식대로만 하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게 이렇게 되면 주가는 요렇게 움직일 거고,저게 저래되면 당연히
어떻게 돼야 하고...
결국 구멍가게가 따분해 뵈던 그녀에게 내린 벌은 70%의 손실,죄목은 "순진함"이었다.
"언니 돈만이라도 회복하면 그만할 텐데... 오늘 여기까지 찾아온 김에 이제 남편이 모르는 부분은 고백해야 되겠어요. 숨기고
사니까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떨구는 A씨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주식시장은 천하의
천방지축입니다.
수백만 투자자들의 개성이 합쳐졌으니 자유분방하기가 한이 없습니다.
금리가 하락하면 주가가
상승한다고요? 유가가 급등하면 장이 빠진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도식적인 생각때문에 다들 실패합니다.
시장은 제 가고 싶은데로 갑니다.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나 똑 같습니다.
어떤 천재적인 공식도
부인하는 황야의 무법자입니다.
내가 짜 놓은 판에 시장을 맞추고자 하면 안됩니다.
사모님 자신을 시장에 맞춰야
됩니다.
남자들 군대가면 배우는 거 있죠? 군화가 작으면 발을 줄이고,군복이 크면 몸을 불려라.바로 이렇게 하는 겁니다.
내 사이즈를 찾다간 기합만 실컷받고 고문관 소릴 듣습니다"
얼마후 실패담을 얘기하는 TV 인터뷰에서 우연히 A씨의
모습을 보았다.
남편에게 사실을 다 털어놓았는지 얼굴이 밝아 보였다.
그날 우리 클리닉 처방을 아직 잊지
않으셨겠지만 노파심에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리고 싶다.
주식에서는 머리가 비어야 배가 부르다는 역설의 진리를.
유학시절,수업시간에 자주 듣던 말 중 하나가 "You are on the right track"이다.
직역을 하면 "당신은
올바른 궤도를 밟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수업의 큰 줄기를 제대로 파악한 학생이 의미있는 질문을 할 때 교수님들이 종종 그런
말을 한다.
세세한 부분은 몰라도 적어도 큰 그림은 올바로 그리고 있다는 일종의 칭찬이다.
던져진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보다,스스로 던지는 "올바른 질문"을 더 중요시하는 그들 교육의 한 단면이다.
미국의 경쟁력은 어쩌면 바로 이
"올바른 질문"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식도 공부다.
경제를 배우고 돈을 배우고,자기 자신을 알고 인생을
깨치는,공부중에도 큰 공부다.
하지만 미국 아니라 별 나라를 유학해도 속 시원한 답이 없는 참으로 난해한 공부다.
그러다 보니 "주식공부를 고시공부 하듯 하라"는 어마어마한 격언까지 생겼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개의 경우 그 공부는 올바른 질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너나 할 것없이 한결
같은 질문이 "어떤 주식을 살까,언제 사야할까?"다.
그래서 그 두터운 상장기업분석 책자를 뒤지고,공룡같은 경제를 한 눈에 넣으려
든다.
추천주,관심주,승부주...하며 맨 날 주식 "사는" 얘길하는 게 출발이 그래서 그렇다.
시황 설명회 끝에
강사를 에워싸고 종목 "찍어주기"를 종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게 "잘못된 질문"이란 말인가?
그 대답은 자명하다.
누가 나서서 잘못됐다고 핀잔줄 필요가 없다.
그 숱한 질문 뒤에 덩그러니 남은
반 토막 계좌들이 숫자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피같은 돈을 반이나 날릴 정도로 "심히 잘못된"질문이었다고.
지금도
늦지않다.
진정 우리 투자자들은 이제라도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큰 그림을 보는
질문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왜 사람들은 주식만 하면 대부분 손실을 볼까...
20년전,또는
2년전에 비해 시장은 몇배씩이나 올랐는데 왜 잃었다는 사람이 더 많을까...
난 무슨 수로 그 소수의 성공하는 무리에 속한
것인가...
도대체 성공과 실패는 무엇에서 가려지는 것일까...
모처럼 올바른 질문이 나온 김에 그 해답을 한번
찾아보자.
간단한 동전 던지기 게임에서 그 답이 나온다.
아주 유리한 도박이 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베팅금액의 한배 반을 받고,뒷면이 나오면 베팅한 돈만 잃는 그런 게임이다.
주식으로 치면 장이 매우 힘이 좋아
이익률이 손실률의 1.5배인 그런 상황이다.
모든 참가자가 천원씩을 가지고 게임에 임한다.
동전을 모두 1백번
던지게 되는데 참가자들은 한가지 사항을 미리 결정해야 한다.
남은 돈의 일정비율을 매번 베팅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비율을 얼마로
할 것이냐는 거다.
주식에서 소위 손절매 비율과 같은 것이다.
1백번을 다 던진 뒤의 결과는 어떨까.
놀랍게도 10%씩 베팅한 사람은 5천5백원이 넘는 반면,40%씩 지른 사람은 거의 깡통을 찬다.
주식이나 동전
던지기나 미래를 모르기는 한가진데 결국 누가 벌고 누가 잃는다는 말인가?
바로 손실을 짧게 가져가는 사람,즉 손절매를 잘하는
사람이 번다는 말이다.
장이 아무리 강해도 손실을 키우는 습관이 있으면 결국 다 잃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손절매를 기계처럼 잘 할 것인가...
이를테면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질문"이 낳은
"옳바른 고민"말이다.
모기가 뜯는 푹푹찌는 여름 밤,남의 다리는 아무리 긁어도 시원치가 않다.
내 다리를 긁자.
이미 반토막난 내 계좌,질문이 그릇되면 본전은 요원하다.
올바른 질문을 하자.
미국에서 공부하는 선배중에 클래식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피차 촌놈이고 생기기로 따지자면 그쪽이 훨씬
촌스러운데,나는 감히 그의 고상함을 넘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내겐 매양 그게 그거같은 그 지루한 음악에 있어 그는 소위
"경지"에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하던 차에 하루는 내가 물었다.
"아무리 취미를 붙여볼라 해도 저는 사흘이 채
못갑니다.
형은 대체 어떻게 해서 대가소리까지 듣게 됐습니까?"
집안 전통도 있고,평소에 음악잡지도 보면서
체계적으로 어쩌구.하는 답을 기대했던 나에게 그는 전혀 엉뚱한 말을 했다.
"유행가는 들을 때마다 코끝이 찡하고,가사가 전부 내
얘기같고. 신경이 너무 많이 쓰이는데 반해서 클래식은 얼마나 좋아? 귀를 맡기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들으면 되니까 말이야.그래서 허구헌 날 듣다
보니까 좀 친해진 거지 뭐"
최근에는 20년만에 대한해협 횡단에 재도전하는 조오련감독의 모습을 TV에서 보았다.
선발된 연예인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모진 훈련을 시키는 장면이었다.
보기만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10미터 높이의
거대한 파도.
그 섬뜩한 너울 앞에 안간힘을 쓰는 제자들에게 조감독은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수영장에서 배운대로
손은 이렇게 젓고 발은 이렇게 나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면 공연한 힘만 다 빼버린단 말이여.신경을 꺼 버리랑께.그리고 바다에 몸을 맡겨 버려.바다와
함께 호흡을 하란 말이여"
위험관리의 대가이신 나의 미국인 스승은 또 이런 말을 했다.
"저점매수 고점매도(buy
low,sell high)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가격이 내린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견해가 아래쪽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저점매수 (buying dips)를 외치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같다.
반대로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시장의 대세가 상승쪽이라는 말이다.
이때 고점매도(selling tops)를 논하는 것은 자라는 나무를 짓누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연에 대항해선 이길 수가 없듯이,투자도 시장을 역행하고선 성공할 수가 없다.
교만을
버리고 내몸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분야는 제각기 달라도 대가들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억누르지 못할 감정이라면 아예
대면을 피하고,허우적거리다 지쳐버릴 파도라면 대항할 생각을 말고,한발 앞서 가려다 실족할 시장이라면 차라리 뒤따라 다니고. 투쟁이 아닌 순종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으라는 것이다.
이 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투자자들은 줄기차게 투쟁의 세월을 살아왔다.
찍고,쏘고,잡고. 때리고,자르고,던지고. 날이면 날마다 포화 가득한 전쟁터를 헤매 다녔다.
고생끝에 낙이 있고
비지땀 뒤에 빵이 생기면 그 수고가 오히려 즐거울 텐데.
그 집요한 싸움끝에 남은 잔해를 보면 허탈하다 못해 멍하다.
이제는 찍기도 두렵고 때리기도 겁난다.
쳐다보기도 지쳤고 기다림도 한계에 달했다.
그만두자니 미련이
남고,계속하자니 더 이상의 고통은 싫고.
그렇지만 힘을 차리고 다시 일어서자.
이 모든 걸 순종 대신 투쟁을 선택한
대가로 여기고 겸손히 받아들이자.
그리곤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대가들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처음 미국을 가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데 의외의 일이 하나 있었다.
수강신청서,안내책자 등이 든 대봉투에서 호각 한
개가 나오는 것이었다.
참 별 일도 다 있다.
애들 장난감 하라고 주는 건가.
어리둥절한 차에 곧
원주민(?)의 해명이 있었다.
늦은 밤 귀가시 누가 위험에 처할 경우,불어서 위치를 알리라는 것이었다.
소위
"문화적 충격"을 받은 작은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귀한 영어 한 자락을 그저 배웠다.
"Blow
whistle" 나중에 우연히 이 말을 들었을 때 금방 그 뜻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호각을 불다"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무슨 문제가 있거나 예상될 때,누군가 나서서 경종을 울린다는 뜻이다.
실질적이든 은유적이든 어쨌든 미국은 호각이
이처럼 각별한 의미를 갖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재난을 대비하는 호각수들이 그렇게 다양하게 포진한 나라가 없다.
전쟁,마약,신종 바이러스,Y2K,토네이도,화산폭발,제3국 테러,환경오염,자원고갈,불황...구석구석 지켜서서 시도 때도 없이
빽빽거리는 덕에 수많은 사람이 큰 화를 피하고 산다.
우리나라는 한 때 대학생들이 목에 핏발을 세우며 호각을 불어댔다.
머리 물들이고 귀에 코에 구멍을 뚫느라 요즘은 뜸해도 전엔 활약이 대단했었다.
지금은 소위
NGO(Non-Government Organizatoins)들이 미주알고주알 따지느라 고생이 많다.
떡도 안생기는 일을 그토록
알뜰히 챙기는 데는 큰 박수가 아깝지 않다.
외환 보유고가 바닥이 나도 호각은 커녕 헛기침 소리도 안내던 정부도 이젠 달라졌다.
체계는 아직 덜 섰지만 적어도 저마다 호각 한개씩은 물고서 눈을 부라리고 있다.
다행히 우리 주식시장 또한 이제는
여기 저기서 호각 소리가 들린다.
위험을 논하는 이가 생기고,"사지마라""팔아라"하는 매우 듣기 힘든 용어를 쓰는 악역도 가끔
출현한다.
깡통 찬 사람이 책을 쓰고,신화적인 손실을 올린 사람도 TV에 나와 말을 한다.
나는 60%이상 틀리니까
나에게 시장을 묻지 말라고 말하는 용감한 펀드메니저도 나온다.
하지만 시장의 주류는 여전히 낙관론자,확신론자들이다.
홍수가 나서 곧 떠내려갈 판인데도,비가 올만큼 왔으니 앉아서 기다려보자는 요행론자들이다.
쌍바닥,진(眞)바닥,역사적
바닥,역사에도 없는 바닥 등을 찾는 바닥론자들이다.
이들은 어찌 된 일인지 승부주,추천주,특징주...하며 눈만 뜨면 주식
"사는"얘기만 한다.
일월효과,총선효과 섬머 랠리(Summer rally),연말효과...하며 철만 되면 보약을 찾는다.
깨진 주식 물어보면 어김없이 단기낙폭과대,기업실적 운운하며 "보유"판결이다.
920,860,820,770,650...수수께끼같은 수(數)들을 나열하며 저점을 논하고...240,200,170,100...주문을
외며 반등시점 점괘를 보고...지난 십 수년을 한결같이 그렇게 흘러왔다.
그러니 디지털,인터넷 시대 뒤에 또 어떤 별난 세상이
와도 변함없이 흐를 것이고...그리고 그 물줄기에 떠내려온 환자들을 보느라 우리 클리닉은 3백65일 낑낑댈 것이고...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 우리도 좀 변하자.
여태껏 샴페인 배달은 많이 했으니 이젠 호각도 좀 불자.
번지점프 백번 시켜주는
사람보다 끊어질 로프 한 번 갈아주는 사람이 더 고맙지 않겠는가.
며느리가 밥상 들고 문지방을 넘으면서 열 두 가지 생각을 한다는 옛말이 있다.
변덕스럽고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고된
시집살이에 빗대어 풍자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투자자들은 종일 주식시세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할까?
여섯시간
동안 숨도 안쉬고 촐랑거리는 주가 앞에서 몇번이나 마음이 바뀔까?
시부모 시집보다 더 살기 힘든 게 "주식 시집"이다보니 실제 그
횟수는 수 백번도 더 된다.
사볼까...아니야 너무 높아...팔아야 되는데...팔고 나서 오르면 어쩌지...나스닥은 올랐는데 우리
시장은 왜 이럴까...투신이 오늘은 좀 사나... 외국인은...이 놈을 찍어볼까...저 놈이 더 잘 갈까...조금만 잡아볼까...아니야 몰빵을
찍어봐...어제까지 총 얼마 잃었지...남편한테 말해 버려...아니야 아예 물타기를 해...어제 그 때 털었어야 했어...아직 점심도 못
먹었네...막판에 또 빼려나...일일이 글로 적자면 하루에 책 한 권은 쓴다.
이렇듯 어지러운 생각중에서도 가장 사람 진을 빼는
건 "얼마에 살까...얼마에 팔까..."다.
십원이라도 절약하고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욕심때문이다.
자,한번
사볼까...얼마로 주문을 내나...삼백원 밑에...아니야 오백원 밑에...고민끝에 일단은 현재가보다 훨씬 아래로 깔아본다.
그런데
매수가 안잡히고 가격이 떠버리면 용이 쓰인다.
1백원만 더 올려서 낼 걸...곧장 시장가로 잡았어야 했어...후회막급이다.
그러다 막상 가격이 내리꽂기 시작하면 이젠 덜컥 겁이난다.
좀 더 내려볼까...아니야 그냥 둬 버릴까...망설임도
잠시,그 길로 쪼르르 달려가 이백원 더 밑으로 정정을 한다.
그러다 오르면 또 후회를 하고,내리면 또 다시 초조해
하고...정정했다 취소했다 또 깔았다 정정했다...주식 한번 사는데 손이 열댓번도 더 간다.
매도할 때도 그 모양은 꼭 한가지다.
위에 대 놓고 기다리다가,가격이 올라 오면 후닥닥 뺐다가,내리면 다시 넣었다가,천원 올려 봤다가,또 좀 내려 봤다가...
누가 보면 부끄러워 낯이 화끈할 정도로 부산을 떤다.
푼돈 몇 닢을 두고 벌이는 전쟁 치고고는 이만저만한 전쟁이
아니다.
그런데 한번 따져보자.
수백권 책을 써 가면서 알뜰살뜰 아끼고 더 받아 낸 그돈들이 다 어딜 갔는지...
돌이켜 보면 참 허망하다.
70-80% 손실에 눌려 흔적조차 안 보이니 말이다.
그 푼돈 벌자고
집채만한 돈을 갖다 바쳤으니 말이다.
자,이제 정신을 차리자.
돈도 돈이지만 더 이상 영혼이 피곤해지면 곤란하다.
더 늦기 전에 치료를 받자.
처방은 하나뿐이다.
모든 주문을 시장가로 내는 것이다.
제일 비싸게 사져라 외치면서 상한가에 매수를 내면 된다.
어차피 다 까먹을 돈 빨리 없어져라 하면서 하한가에 때리면
된다.
그렇게 하면 손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십원 싸게 잡으려다가 얼마나 큰 기회들을 놓쳤는지
상기해보면 알지 않는가.
1백원 더 먹으려다가 4분의1 토막 내버린 종목들이 증명해주지 않는가.
"조정시
저점매수,반등시 고점매도"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했는지 보고도 모르는가.
티끌을 모으다간 태산이 날아간다.
열 두가지 생각은 성가시기만 하고 돈이 안된다.
한가지만 생각하자.
주식은 티끌을 주고 태산을
받아오는 게임이라는 생각 말이다.
최근 강연을 다니면서 "이번 장에 드디어 당했다"는 얘길 자주 들었다.
그래,투자클리닉 말이 맞아.수익보다 생존이야.리스크
관리밖에 없어...하며 몇달을 큰 손실 안보고 잘 버텨오다가 설마 여기서 더 빠질리가...하는 안일한 생각 한 번으로 결국 남들과 같은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위험관리를 한번만 더 생각 하셨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이 험한 장을 꽤 오래
지켰으니 잠재력은 증명됐다.
심기일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연구를 해보자.
카지노는 손님보다 눈꼽밖에 유리하지
않은데도 손님 열에 아홉은 차비만 남겨 보낸다.
주식시장도 오른다 내린다 50대50 게임에서 대부분이 깨지고 만다.
두 곳 다 반반 확률로써 고객을 잠재우는 마법의 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카지노의 비술을 캐내면 되지 않을까.
그리하면 그 마법을 깨는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지혜를 주식에 가져오면 되지 않을까.
자,이제 그 비밀을 캐보자.
라스베가스는 카지노마다 서비스가 만점이다.
음료수는 무료,음식과 숙박은
염가봉사다.
큰 돈 가져오는 사람은 호텔 프론트에 그 돈만 맡겨 놓으면 모든 게 공짜다.
갈 때까지 한푼 안꺼내
써도 OK다.
따고 가는 손님은 최고급 스위트룸을 제공하면서까지 며칠 더 붙잡기도 한다.
그들의 전략은 이렇듯 별
것 아니다.
"최상으로 모실테니 오래오래 놀다 가세요"다.
무슨 배짱으로 그처럼 후한 것일까...근소한 확률
차이만으론 그렇게 큰 이익이 안 날텐데...
그렇다.
믿는 구석이 있다.
"시간"이 그들 최대의
무기인 것이다.
의미인즉슨 이렇다.
육체와 마찬가지로 사람 심리도 많이 쓰면 피로하다.
그리고 피로가
한계에 달하면 흔들흔들하다 한 순간 푹 쓰러진다.
기계가 아니고 인간인 한,개성에 따라 시차는 있어도 거의 반드시 이런 순간이
온다.
카지노가 기를 스고 손님을 유혹하는 건 바로 이 약점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반반 게임인고로
욕심만큼 돈은 안되고,그러다 보면 안달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고...또 손실 본 이들은 그들대로 본전 생각에 시달리기 마련이고...천 달러 땄다가
3백달러 뱉어 낸 사람도 마치 3백달러 잃은 사람처럼 속이 쓰리는 법이고...어떤 연유로든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 순간 심리가 "휘청"한다.
카지노가 기다리던 "무리한 베팅의 공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1달러,2달러에 연연하던 사람이 10달러,20달러에도
눈썹하나 까딱 안하고...나중에는 1백달러,2백달러 왔다갔다해도 무덤덤하고...결국 열시간 지겹게 본전하다가 깡통차는데는 30분도 채 안걸린다.
카지노가 쳐 놓은 시간의 덫에 마침내 걸려든 것이다.
공연 시작 나팔을 부는 그 순간,카지노는 유유히 승리의 미소를
머금고 이미 다음 먹이감을 노려보고 있다.
깡통들고 버스타러 가는 때가 아니라 휘청하는 그 찰나에 이미 끝난 게임이기 때문이다.
주식하는 사람이 벌어도 그 부를 못지키는 게 바로 이 덫을 못피해서 그렇다.
기업 내용을 모르고 질러서가 아니라
열받은 김에 "마구"질러서 그렇다.
뒷손 잘맞는 판이 올때까지 얄밉도록 3점씩만 주고 있어야 한다.
카지노가 가장
싫어하는 냉정한 도박사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급해질 때는 등 뒤에서 노려보는 카지노의 음흉한 미소를 기억하자.
"요시 주식은 투자가 아니고 투기야,투기","데이 트레이더(day traders)의 투기적 매매 때문에 변동성이 너무 커졌어"."장이
안되느까 기관이나 외국인도 요즘은 완전 투기적이야.샀다가 좀 먹으면 금방 확 엎어 버리고..."
최근에 한번씩은 다 들어봤음직한
말들이다.
투기매매의 극성으로 시장이 불건전해졌고,종잡을 수 없고,또한 못 오른다는 것이다.
불평이 절로 나오는 그
갑갑한 심정들,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이렇게 사람 애를 태우는 장에 짜증이 안 난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데 나는
그런 분들을 뵐 때마다 걱정되는 게 있다.
그게 그냥 한번 내뱉는 푸념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같은 것이면 어쩌나 하는 점이다.
만일 말하는 바 그대로 실제 믿고 있다면 큰 문제다.
긴급 치료를 요하는 중대한 개념상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점을 지적해 드리고 싶다.
앞서 불만의 변은 단기투자,또는 단타매매를 "투기적"이라 못박고
있다.
기업내용은 불문하고 시세 차익만 노리니까 투기,더 솔직히 도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 깔린
"투자"의 의미는 보다 고차원적이다.
수익성,성장성을 따져 우량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주식에 장기로 묻어두는 "품위있는
자산운용"인 것이다.
과연 옳은 생각일까...
투기와 투자를 주식보유기간과 목적에 따라 구분하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그런 발상은 매우 위험하며 많은 경우 치명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뜻이다.
피서객으로 꽉찬 경포대 해변의 튜브장사는 분명 사업성이 있다.
날씨만 계속 더워주면 재미가 꽤 짭짤한 투자다.
하지만 거기 풀 베팅(full betting)해 놓고 사시사철 판을 깔고 있으면 그건 투기다.
여름 한 철 바짝
챙기고 찬바람 불면 설악산 단풍객을 찾아 나서는 게 투자다.
근사하게 차려놓고 폼잡는 게 투자가 아니고,여차하면 물러서는 게 진정
투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늘 재빠르게 옮겨 다는 게 다 투자는 아니다.
새벽엔 요구르트 돌리고,낮에는 보험
팔고,밤에는 포장마차 하는 억척여성을 보자.
그만한 건강을 가진 사람이 하면 그건 투자다.
하지만 한달만에 쓰러질
골골한 여성이 하면 그건 건강을 담보로한 투기인 것이다.
내년도 유가예측을 하고 앉아 있는 건 투기다.
유가가
얼마얼마가 되면 어떻게 어떻게 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짜는 게 투자다.
반 토막난 우량주를 들고 있는 건 투기고,곱이 된 부실주를
갖고 있으면 그건 투자다.
요새 같으면 주식팔아 돈 들고 있으면 현금투자고,아직 주식들고 끙끙대면 주식투기다.
현존하는 재난을 피해 있고 다가올 재난을 대비하는 건 투자고,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는 건 다 투기다.
나는 발빠른
단타매매의 신봉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는 "장기투자"의 지지자는 더더욱 아니다.
치고 빠지고 하다
수수료로 다 안날리면 큰 거 한방에 깡통 차버리고...
도대체가 단타든 장타든 날렸다 하면 전부 아웃인 걸 누구편을 들란 말인가.
사놓고 푹 잊어버리든,매일 눈 빠지게 쳐다보든,위험관리 없이는 애당초 승산 없는 게임이다.
그런 게임을 하는 게
바로 투기다.
엎치락뒤치락 하루에 몇번을 들락거리든,몇년을 장롱밑에 묵히든,이 싸움의 잔혹함을 알고 늘 조심하면 그건 투자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바로 알자.
그래야 큰 낭패를 보고 남 탓을 하는 안타까운 처지를 안 당한다.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주식학교의 무서움을 모른다.
대개의 경우 주식이 돈 된다고 천지가 떠들썩할 때 입학을 하기
때문이다.
때가 때인만큼 신입생 환영회도 분위기가 좋다.
입학하자 마자 거하게 한 상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행복도 잠시,불시에 떨어진 모의고사에서 한번 된통 혼이 난다.
이게 장난이 아니군...하며 그제서야
머리를 싸매지만 답이 나를 피하는지 내가 답을 피하는지...좀처럼 성적이 안 오른다.
그래서 고심끝에 생학해 낸는 게 과외공부다.
펀드계의 신화,전설의 족집게,대박의 화신,재야의 고수...용하다고 소문난 선생님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정답 좀
미리 가르쳐주십사...참한 놈으로 하나만 점지를...정중하게 머릴 조아리는가 하면,아예 돈 보따리를 갖다 맡기는 학생도 있다.
사정이 절박한 만큼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는 그 심정 또한 애절하다.
선생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이제 곧
나아지겠지...하지만 생전 못보던 문제가 수두룩한 이 주식학교 공부에는 과외 선생님도 대책이 없다.
아무리 연필을 굴려도 알쏭달쏭
답을 모르겠고,학교 성적은 점점 더 떨어지고...조마조마하던 차에 마침내 불길한 예감이 적중을 한다.
"무슨 선생님이 이래.나보다
나은 게 없잖아"
참다못한 학생이 움켜쥐었던 가랑이를 팽개치고 독학선언을 하는 것이다.
그래,믿을 사람이
없어...혼자 하는 거야...입술을 깨물고 다시금 홀로서길 해보지만 막막하긴 매한가지...가속도가 붙은 내리막 행진은 브레이크가 없다.
나도 깨먹고,선생님도 깨먹고,또 내가 깨먹고...주먹만하던 왕사탕이 눈깔사탕만큼 작아진 것이다.
주식이
"찍는"게임이라면 미아리 산신도사밑에 가서 수련을 쌓아야 한다.
주식이 공부해서 되는 일이라면 S대 수석 합격자한테 과외를 받아야
한다.
그런에 오랜 세월,비싼 수업료주고 깨쳤듯이 주식은 그런 게 아니다.
누굴 붙잡고 물어봐도,어떤 선생님 지도를
받아도 답이 안나오는 어려운 문제다.
많이 번민할수록,깊이 연구할수록 더 빨리 꼴찌로 미끄러지는 참으로 신비로운 공부다.
그러나 절망할 것은 없다.
둘러보면 도처에 선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잘난 것 없고 어수룩해 보여도
남다른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잘 오르는 주식을 언제 팔까 안달할 때,쳐다보지 말고 목욕이나 가자던 그 사람.
추락하는 장에서 한푼이라도 더 건지려고 아둥바둥할 때,몇 달 쉬다 오자며 일어서던 그 사람.
화장실 다녀오는 그 몇
분 사이에 내가 망설이던 손절매를 대신 쳐 줬던 그 사람.
바로 나의 심리적 한계를 극복시켜준 그 사람이 내 선생이다.
물타기는 체중만 불려서 영원히 물밑으로 잠수하는 거라고 말하던 그 사람.
몰빵은 멸망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넌지시
한 마디 해주던 그 사람.
지극히 인간적인 나의 욕망을 깨부셔주던 그 사람이 진정 내게 필요한 선생인 것이다.
주식은 가시밭길 역정이다.
감성을 가진 인간인 이상 우등생 되기가 정말로 힘든 공부다.
이길을
인도해줄 나의 선생님은 저 멀리 구름을 타고 다니는 도사가 아니다.
장안의 화제,적중률 100%의 유명강사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날마다 자신을 타이르는 그런 분이 진짜 선생님이다.
잘 찾아보자.
그런 이름없는 선생님들을.
대한민국 주식의 자존심 삼성전자가 퍼렇게 멍이 들었다. 박사님께.
한 2년 포시랍게 잘 사는가 싶더니 토닥토닥 불화 끝에 마침내 소박을
맞았다.
마음 변해 떠나는 옛 연인,가랑이 붙잡고 늘어질 수도 없는 노릇.
거자필반이라 했으니 옛정이 되살아 나면
돌아올테고.
오늘은 그간 선전해 주었던 삼성전자에 얽힌 얘기를 좀 해 보고 싶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삼성전자"를 입에 달고 살았다.
주식은 "파는" 게임.
그 파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제 목
: 어느 가정주부의 편지
안녕하십니까?
초면에 실례인 줄 알고 있으나 너무도 답답해서 이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박사님께
좋은 조언을 얻고자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주식에 주자도 모르면서 남들 하니까 한번 해보자 하고 손을 대었건만 주식 폭락으로
저희는 거리로 나앉을까 걱정이 됩니다.
주위의 돈을 빌려서까지 투자했지만 이익을 보기는 마다하고 빚더미에 앉을 형편입니다.
저희 주식 모두 뽑았으니 참고하시고 좋은 말씀 기다립니다.
박사님의 건강을 빌면서.
안녕히 계십시오.
어느 가정주부 드림.
<>보유종목:D중공업,G증권,H건설,H엠닷컴,H전자,K은행,T전자,Y반도체...
<답장>
사모님 보십시오.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펜을 잡았다가
던지고 다시 일어서길 여러번 한 탓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선 과연 "좋은 조언"이란 게 어떤 것일까.
오랜 고심끝에
이 글을 드리오니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고 위안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두세달 전,대부분 계좌가 그나마 절반이라도 남았을 때만해도
괜찮았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지금이라도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내릴 때마다 팔아야 한다,작은 실패는 큰 성공의
일부다,돈을 들고 살아 남아야 한다,그리고 비쌀 때 사야지하고 기다리다 보면 안 사고 안 잃어서 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말도 다
공허해졌습니다.
급기야 80%를 잃고 존폐의 위기에 처한 이 지경에 위험관리는 사치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장이 언제 회복될 것인가,연말엔 좀 뜰까 하는 생각들뿐인 것입니다.
다급한 심정으로 달려오시는 투자자들.
그 사연들은 한결같이 참담합니다.
작년에 좀 벌었다고 올초에 전재산을 넣었다가 요즘은 밥 한 그릇 사 먹기도
주저되신다는 분,노후 자금을 다 까먹고 빚까지 져서 밤잠을 못 이루시는 노부부,많던 재산이 30%도 채 안 남아서 병이 나신 분,본전 만회의
일념으로 손자에게 컴퓨터를 배워 데이 트레이딩을 하시는 노인.
볼수록 딱하기만 한 이런 분들을 위해 제가 하는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공허하고 사치스러워 보일지어정 그래도 여전히 소중한 것,바로 위험관리의 대원칙을 깨쳐 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남은 재산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끊임없이 혹독한 정신적 고통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모님,두세 달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늦지 않았나 느낄 그 때가 가장
빠른 것입니다.
사모님께 필요한 건 어떤 주식을 팔고 어떤 걸 보유할 것인가의 결정이 아닙니다.
올바른
투자철학,그리고 이에 근거한 올바른 원칙수립과 습관형성입니다.
철학이 올바로 서면 주식을 대하는 자세가 변화합니다.
원칙이 바로 서면 그 때는 현상황을 타개할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올바로 형성된 습관은 언젠가 오게 될
상승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사모님은 지금 적군이 몰려우는데 총알이 몇 발밖에 남지않은 병사의 입장입니다.
급한 김에 아무렇게나 방아쇠를 당기면 결말은 뻔합니다.
절대절명의 이 순간에도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정조준해서
원칙대로 쏴야 합니다.
조만간 꼭 한 번 뵙고 더 자세한 말씀 나눌 수 있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김지민원장 드림
땅이 좁아서인지 국민성 때문인지 우리 나라는 뭐든지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인기 여배우의 뉴 헤어스타일은 사흘이면 전국에
대량의 복제인간을 생산한다.
또한 돈 된다는 뉴스에는 순식간에 수천 명이 몰려 돗자리를 깔고 눕는다.
휴대폰이나
인터넷 사용 증가를 봐도 역시 우리는 세계에서 으뜸 가는 속도국이다.
하지만 빠르다 보면 탈도 나는 법, 자동차 사고는 우리가
월드 챔피언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로 초고속 질주 끝에 전복이 되어 거의 죽다가 살았다.
과속으로 인한 대형 참사는
주식에서도 한가지.
하루빨리 뻥튀기 해 보자고 뛰어든 것이 일년 내내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발 빨리 정보를
얻고,일 초 빨리 사고 팔자 하다가 사이버 기계에 얼마를 털렸는지 모른다.
세계 최고 주가 상승국에서 최고 하락국으로,세계 최고
속도의 "왕복달리기"를 하다가 말이다.
이래서 나는 우리의 빠르고 영악함이 자랑스러울 때보다 걱정스러울 때가 더 많다.
그런데 최근에 그 걱정이 또 하나 늘었다.
바로 시스템 트레이딩(system trading: ST)의 급속한
확산이다.
선물이 확산될 때도 그토록 위험관리를 강조했음에도 거의 전멸을 해 버렸는데 사이버 매매는 심리적으로 말려들기 십상이라서
마치 비행기에서 바위를 짊어지고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는 것처럼 빨리 까먹는다고 그렇게 외쳤어도 결국은 당하고 말았는데 프리 코스닥은 가격이 눈에
안 보이니 마치 장님이 목검 들고 일류 검객을 상대하는 것 같은 큰 모험이라고 조심을 당부했는데도 너나없이 다 쓰러지고 말았는데 새로 나온 이
요물,ST는 또 어떻게 하나 여기 그 주의 사항을 알려 드린다.
ST란 "그 때 그 때 상황 판단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로직(logic)에 따라 기계적으로 하는 매매"를 말한다.
예를 들면 매주 화요일에 사서 금요일에 파는 것도 일종의 ST다.
5일,20일 이동평균선이 교차할 때마다 매수,매도를 하는 것도 ST다.
여러 복합적인 로직을 컴퓨터에 입력해 두고
매매 신호가 울릴 때마다 주문을 넣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인 ST다.
이처럼 ST는 투자를 망치는 주범인 인간의 감정을 배제시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과거 데이터 분석 결과 상당한 수익이 증명된 로직을 택하므로 투자 결과에 자신도 있다.
하지만
장점밖에 없어 보이는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로직을 믿고 꼭둑각시처럼 따라만 하다가 졸지에 지옥으로 떨어지기
일쑤라는 말이다.
언제 그렇게 되느냐고?
미래가 과거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 때다.
생전 못 보던
가격 움직임이 계속될 때,어어 하다가 뒤통수를 얻어 맞는 것이다.
신화적인 투자가 워렌 버펫도 그래서 일그러졌고,노벨상에 빛나는
롱텀 캐피털도 그래서 망가졌다.
늘 피해만 가던 총알이 딱 한 번 제대로 와서 꽂혀 윽 하고 무릎을 꿇었다.
진짜
좋은 시스템은 과거에 못 본 어떤 생소한 상황에도 대비를 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매수,매도 신호보다 돈 관리를 더 중시하는
시스템이 올바로 된 시스템이다.
수익 창출보다 손실 관리가 더 정교하게 구현돼 있는 게 믿을 만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시스템 트레이딩은 말처럼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 게 다 잘 돼 있는지 어쩐지 여하튼
시스템 트레이딩은 놀라운 속도로 질주해 오고 있다.
소문만 믿고 무턱대고 덤비면 또 당한다.
매매해서 깨지고,펀드
사서 물리고 제발 여기서는 같은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 어느 TV 방송에서 현재 주식 인구가 약 3백50만 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어느 신문에서는 총 활동
계좌가 8백만 남짓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한 사람이 여러 계좌를 가진 경우가 있어 두 수치에 차이가 있는 듯 싶다.
그러면 지난 20여 년간 방치, 폐쇄된 것들까지 다 합하면 총 몇 계좌나 될까?
지금 활동 중인 게 8백만이니
누적으로는 천만 개는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 열이면 여덟, 아홉이 잃었다 하니 계좌마다 평균적으로 마이너스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계좌당 평균 손실액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개인, 법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5백만원으로 한 번 잡아
보자.
만일 실제 그 정도라면 총 주식투자 손실액이 5십조(兆)라는 말이다.
5백만원 곱하기 천만 계좌 하면
5십조다.
이런 계산이 나오는 순간, 투자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연이어 나오는 질문이 그러면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느냐?
종합지수는 80년에 비해 다섯 배 올랐고, 코스닥은 96년에 비해 20%밖에 안 빠졌으니 평균적으로 벌었어야 맞는
것 아니냐?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는 것이다.
오늘은 간단한 모델을 통해 이 수수께끼를 풀어 드리려 한다.
A와 B 두 회사가 있다.
3년 전에 둘 다 공히 자본금 50억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각각 액면가
5천원짜리 주식 백만 주씩을 발행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 이 때부터 주가지수 산출이 시작돼 시가총액 1백억원에 지수는
100이었다.
1년 후, 각 회사 주가가 두 배로 올라 시가총액은 2백억원, 지수는 200이 됐다.
그런데 이 때
자본금 1천억원의 C 회사 주식이 상장됐다.
액면가 5천원에 주수는 2천만 주다.
따라서 지수는 여전히 200인
반면, 시가총액은 1천 2백억원으로 늘었다.
이로부터 1년, A와 B는 주가 변동이 없었는데 C는 주가가 1만1천원이 됐다.
따라서 시가총액이 1천 2백억원에서 2천 4백억원으로 증가해 지수는 200에서 400으로 뛰었다.
그런데 이 때 C
회사가 9천원에 100%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따라서 증시에는 1천 8백억원이 더 들어왔고, C의 주가는 1만1천원에서 1천원이
권리락 돼 1만원이 됐다.
결국 지수는 여전히 400인데 시가총액은 4천 2백억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1년 사이, A의 주가는 그대로인데 B는 부도가 났고, C는 액면가로 되돌아왔다.
B는 가치가 제로, A는 여전히 1백억원,
그리고 C는 2천억원이 됐다는 말이다.
따라서 시가총액이 2천1백억원으로 반 토막 나면서 지수는 400에서 200으로 빠졌다.
자, 이제 지난 3년을 되돌아보자.
지수는 100에서 200으로 두 배 올랐다.
그런데 그간
주식시장에 갖다 넣은 돈은 총 얼마인가?
A, B 회사에 각각 50억원씩 합이 1백억원이고, C 회사에는 증자까지 합해서 2천
8백억원이다.
총 2천 9백억원이다.
그런데 지금 시가총액은 얼마인가?
2천1백억원이다.
따라서 지수가 두 배로 뛰는 와중에 총 8백억원의 손실이 난 것이다.
2천 9백억원 투자해서 8백억원 잃었으니
수익률은 계좌당 평균 마이너스 27.6%다.
이제 지수가 상승해도 평균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자자별로 한 번 보자.
이익 난 A 회사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그래도 조금 벌었다.
빠지는 C 회사 주식을 처분한 사람은 고가에 증자를 받았어도 대충 본전은 했다.
투자습관이 올바로 배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누가 다 잃었나?
미련이 남아 추락하는 B 회사 주식을 끝가지 들고 있던 사람, 바닥을 외치면서
내리는 C 회사 주식을 잡은 사람들이다.
투자습관이 잘못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식은 지식이나 정보의 싸움이
아니라 투자습관의 싸움인 것이다.
최근에 어느 외국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국 시장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 끝에 우리 투자자들의 안부를 물어 왔다.
"Depressed or shocked?" 실의에 빠져 있느냐 아니면 충격에 쌓여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매일 대하는 모습들이 어쩐지 그 두 단어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답이 "Out of their minds.(제 정신이 아니다)"였다.
멍하니 넋이 빠져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달리
적당한 표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럭저럭 뜻은 전달했지만 여하튼 요즘 투자자들은 한 마디로 그렇다.
근심,후회,분노,절망감,조바심,죄책감 등에 너무 오래 짓눌려 이제 멍한 상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을
줄기차게 시달렸으니 정신적으로 탈진할 때도 된 것이다.
자식들을 쳐다보면 미안해서 눈물이 절로 흐른다며 허공을 응시하는 주부.
몇 푼 안 남은 돈, 마저 다 잃고 칵 없어져 버리면 끝 아니냐며 비통해 하는 퇴직자.
그런 분들과 5분만 같이
있어 보라.
넋을 잃었다는 것보다 더 좋은 표현이 떠오르는지.
몇 년에 한 차례씩 어김없이 치르는 깡통 축제.
몇 해를 피땀 흘려 한 방에 태워 버리는 이 허망한 불꽃놀이를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주식은 자기 책임 하에 하는
거라는 원론적 얘기만 하고 있기엔 국민들 고통이 너무 크지 않은가.
죄가 있다면 돈을 탐한 "욕심죄"밖에 없는데 그에 비하면
치르는 죄값이 너무 과하지 않은가.
물난리보다 수십 배 더한 물질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이 주식난리,더 이상의 방관은 곤란하다.
관련된 모든 이들이 순박한 투자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보호 말이다.
우선
양(兩) 거래소는 주식시장의 중요성 이전에 그 위험성부터 알려야 한다.
기업 자금의 직접 조달도 좋고 자본주의의 발전도 다 좋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국민 잘 살게 하자는 건데 바로 그 국민이 와서 다 깨지고 가면 무슨 소용이 있나.
진심으로
그들을 위한다면 이 시장의 무서움을 솔직히 말해 줘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잃었는지 생생한 통계를 보여
줌으로써 말이다.
감독기관도 할 일이 있다.
작전,허수 주문,내부자 거래 선량한 투자자의 치를 떨게 하는 이 사악한
것들을 영원히 멸절해야 한다.
손실을 본 게 아니라 농락을 당했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충격과 분노 그걸 생각해서라도 솜 방망이
얻어 맞고 평생 팔자 고치는 이들이 다시는 안 나오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언론도 도와야 한다.
깜찍한 신데렐라
스토리는 희망이 아닌 환상을, 미소가 아닌 피눈물만 싹 틔우지 않는가.
경이적인 수익을 올린 사람, 그 당시보다 그 이후가 훨씬
중요함을 깨닫고 끝까지 쫓아 가자.
그리하여 대부분 그들 영광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었음을 증명해 보이자.
그래야
우리 투자자들이 떼돈을 좇는 꿈에서 깨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 아닌가.
정부도 눈을 떠야 한다.
주가
하락을 염려하고 부양책을 쓰는 건 하책(下策)이다.
정부 아니라 그 누가 간섭을 해도 시장은 결국 제 갈 길만 간다.
괜한 수고 하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리자.성실한 우리 국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황금만능주의,한탕주의를 어떻게 치유하고 국민
의식을 높일 수 있을지 보다 근원적인 고민을 하며 밤을 새우자.
끝으로 증권사들도 이제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자.
직원들 코피 나고 고객들 망하는데 회사만 살찐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경쟁은 그만들 하고 이제는 진정 투자자를 위한
경영을 하자.
진정한 투자자 보호.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한 데 모아져야 한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친구가 있다.
워낙 알뜰하고 확실해서 동창회 총무도 십 년 장기집권 중인 친구다.
주식
같은 건 안 할 것 같던 그가 최근 모임에서 의외로 주식 얘길 꺼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야,
김 원장. 나도 주식을 살짝 좀 해 봤는데 말이다, 손절매 그거 정말 어렵더라. 내 업(業)이 부동산 자문 아니냐. 나도 고객한테 물건 사 주고
나서 값이 떨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전화해서 팔자 하거든. 그런데 막상 내 주식은 도저히 안 되더라. 본전 생각 하다가 결국 못 팔고 몇 달째
고생하고 있다. 니 말대로 인간인 이상 손절매는 불가능한 것 같더라."
동창회비 십원도 허투루 안 쓰는 이 친구까지 굴복시킨 걸
보면 주식이 과연 기(氣)가 세긴 세구나 생각을 하면서 내가 물었다.
"야, 그런데 니 혈액형 뭐고?" 갑자기 나온 엉뚱한 질문에
잠시 멍해 하는 찰나, "와, 혈액형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그래, 무슨 형(型)이 주식 잘 하노?" 하고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딴 친구가
물었다.
내가 말했다.
"딱 한 가지 형(型)밖에 없다. 한 번 맞춰 봐라." 그랬더니 너도나도 한 마디씩 껴들어
금방 네 가지가 다 나왔다.
내가 묵묵부답이자 나중에는 누군가 RH 마이너스 형까지 들먹였다.
호기심이 극에 달했을
때, 내가 입을 열었다.
"무슨 형(型)인가 하면 말이다, 바로 주식형이다, 주식형(株式形). 돈 벌고 싶으면 피를 주식형으로
바꿔라."
순간 좌중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리고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다들 "그래, 주식은 진짜 힘들어."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TV에서 비슷한 얘길 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바둑계 거장 한
분이 해설 중에 하는 말이 "바둑은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는 게임이다.
어디 한 군데라도 허점이 보이면 요 때다 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이길 수 있다.
그러니 마음씨 좋다 소리 듣는 사람, 따뜻한 피를 가진 사람은 고수(高手)가 될 수 없다.
피가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만이 최고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식과 바둑, 분야는 달라도 승부는
"피"에서 갈라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주식형(型)이든 바둑형(型)이든 차가운 피가 결국 승리한다는 사실
말이다.
지금은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다.
답답하고 캄캄해서 속이 탄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초겨울
날씨 이상으로 차가운 피를 지키자. 후회하고 염려하면 열만 더 받는다.
용을 쓰고 조급증을 내면 피만 더 데워진다.
냉정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 남은 돈, 오늘 종가로 평가된 금액을 본전이라 생각하자.
천재지변을 당했다, 피할
겨를도 없이 홍수가 덮쳐 겨우 몇 푼만 들고 나왔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생명은 건졌다고 스스로 위로하면 어떨까.
어떻게든 각자
마음을 추스리고 때를 기다리자.
애먹이던 자식이 마음 먹고 효도를 하기 시작하면 화끈하게 하지 않는가.
정신 차릴
때까지는 방법이 없다.
얼음처럼 싸늘하게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그리고 그 기다림이 결실을 보려면 그나마 붙어 있는
이 생명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무리하게 벌 생각 말고 십원이라도 덜 까먹고 지킬 궁리를 하자는 말이다.
미국대선,
환율급등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수시로 내 피나 체크하자.
요즘 우리 투자자들은 참 어렵다.
고개만 쳐들었다 하면 실컷 두들겨 맞고 꼬리를 내리는 장(場)에 번번이 희망은 물거품이다.
경마도 안 되고 카지노도 어림없고 이자 낼 날은 꼬박꼬박 닥치고 마음이 점점 바쁘다.
그러다 보니 매번 허탕을
치면서도 또 머리를 쓴다.
1등 주식을 잡아야 하는데 가장 빨리,그리고 힘차게 돌아서는 놈.
그런 놈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단번에 본전 찾는데 그런 노림수로 인해 결국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좀처럼 유혹을 못 떨치는 것이다.
우리 클리닉에는 급한
김에 이처럼 저점에서 몰빵을 찍다가 중상을 입은 환자들이 많다.
소위 추세역행증과 한탕주의증 합병증 환자다.
그런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한다.
"거꾸로 생각하십시오.
주가가 얼마까지 오르면 사야지 하고 아주 높은 데에 매수
가격을 정하시란 말입니다.
그러면 요새 같은 장에 안 사고 안 잃어서 좋습니다.
하락장엔 현금이 황제주(皇帝株)라는
게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다 보면 이익이 덜할 수는 있지만 벌 때 좀 덜 벌면 어떻습니까?
돈이
한정된 우리로선 잃을 때 덜 잃고 살아 남는 게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보기 드문 환자 한 분을 만났다.
나이가 꽤 드신 아주머니였다.
"전에는 주식이 내릴 때 샀는데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 그 반대로 바꿨어요.
그런데요,요새는 하루 오른다 싶어서 따라 사면 금방 빠져 버리거든요.
그래서 오르는 주식 사다가 맨 날 손해만
봐요"
아이쿠 이런,내 강의를 제대로 이해 못하셨구나 생각하며 내가 말했다.
"아주머님,하루 오르는 걸 어떻게
오른다 할 수 있습니까?
힘이 굉장히 세구나 싶을 정도로 많이 오를 때 사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더 올라가면
기다리고,빠지면 금방 손절매하고 중요한 건 많이 뜨기 전엔 사지 마라는 겁니다"
그러자 그 분이 대답했다.
"그건
알겠는데요,어떻게 며칠씩이나 그렇게 주식을 안 사고 기다려요?
나는요,하루도 주식이 없으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와요"
순간 나는 뭘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깨지는 주식 들고 있으면 잠이 안 온다,꿈에서도 주가가 보인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깬다는 분은 많이 봤지만 이런 분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 날 이후,나는 우리 클리닉에 새로운 증세 하나를
추가시켰다.
바로 "주식중독증"이다.
재산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데 익숙해진 탓에 정지해 있다는 게 오히려 불안한 것.
항상 청룡열차만 타다 보니 평지를 걷는 게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돈이 늘고 줄고를 떠나서 출렁거려야만 사는
맛이 나는 것.
실제로 많은 투자자들이 갖고 있을 법한 증세다.
사실은 나 자신 또한 경험이 없는 바 아니다.
80년의 봄,그야말로 실컷 두들겨 맞고 입대를 기다리던 때.
다가올 고난에 대비,헌 군화를 사 신고 구보 연습을
하던 때.매일 최소 15킬로는 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뜀박질 중독이 됐던 때.
걷는 게 답답해서 멀든 가깝든 온 천지를 미친놈처럼
뛰어다닌 적이 있어 그런 중독의 심각성을 안다.
고스톱도 패가 나쁘면 죽었다가 또 친다.
춤도 초지일관 흔드는 게
아니라 간간이 블루스도 추고 휴식도 한다.
주식도 쉬다 가다 하는 거다.
일년 열 두 달 주식을 들고 씨름하는
"주식 중독증".
평소에는 몰라도 하락장에 한 번 걸리면 반드시 깡통을 차는 치명적인 증세다.
가끔씩은
무주식상팔자의 지혜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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